[14.08.09 한겨레] 휴, 33억원어치 가압류가 풀렸네

 

▲ 지난 2012년 3월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보도국 복도에서 문화방송 기자들이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회사 쪽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은 합법이었다”며 회사 쪽의 손배 청구를 기각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손잡고 / 손배 가압류의 현장 ⑦ MBC

▶ <문화방송>이 노조에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의 판결문을 보면, 김재철 전 사장과 보도국 전 간부들이 기자와 피디들의 취재를 어떻게 막고, 인사권을 남용했는지가 낱낱이 적혀 있습니다. 이에 대항해 ‘공정방송’의 기치를 내걸었던 언론인들은 33억원의 가압류에 시달렸고, <한겨레>가 손배 가압류의 현장인 문화방송을 취재하던 지난 6일 법원은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가압류를 해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가압류가 걸린 지 무려 2년4개월 만의 희소식이었습니다. 가압류 현장 기사 제보 handinhand@hani.co.kr

 

 

2012년 <문화방송>(MBC)의 노조 간부였던 장재훈 전 정책교섭국장이 올해 5월26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업무방해 사건의 피고로 법정에 섰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우리 동네에서 끔찍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딸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하루빨리 이사를 가고 싶다. 하지만 집이 가압류당해 이사를 못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일로 가압류를 당하고 있는 걸까.

 

문화방송에서 부동산 가압류를 당한 사람은 장 전 국장만이 아니다. 정영하 문화방송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강지웅, 박미나, 김인한, 채창수, 김정근 등 노조에서 주요 간부를 역임한 7명이 2012년 4월6일부터 부동산을 가압류당했다. 이용마 전 홍보국장, 이창순 전 보도부위원장 등은 급여와 퇴직금이 가압류됐다. 문화방송이 노조에 가압류한 금액은 총 33억8562만원. 이 중에서 조합비를 제외하고 노조 간부들의 부동산과 급여, 퇴직금에 걸린 가압류 금액만 11억2700여만원에 이른다. 회사가 노조에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은 총 195억원이다.

 

노동계는 손배 가압류의 현장으로서 문화방송이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우리 사회에 던져줬다고 평가한다. 하나는 적법한 파업의 범위로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이 합법이 될 수 있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 부문 손해배상 사건에서 가압류의 절차와 위력이다.

 

 

공정방송 내건 170일간 파업 
손배 금액 총 195억원에 
가압류 33억원이나 걸렸지만 
1심 판결서 ‘합법 파업’ 인정 
가압류 이의신청도 법원이 수용 

 

그동안 재판의 핵심 쟁점은 
공정방송이 파업 목적 될 수 있나 
“방송의 절차적 공정성 규정 두고 
사용자가 인사권 남용하면 
근로조건 저해하는 행위” 판결

 

 

부동산과 급여·퇴직금 가압류만 11억원

 

우선 파업의 목적부터 살펴보자. 문화방송 노조는 2012년 ‘공정방송’의 기치를 내걸고 170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보도국을 비롯해 예능국마저 파업에 참여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마저 결방됐다. 대선 기간 박근혜, 문재인 당시 후보들이 앞다퉈 문화방송과 <한국방송>(KBS)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걸 정도였다. 하지만 170일간의 파업과 대선 이후 노조를 기다린 것은 해고·정직 등의 징계뿐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였다. 이는 해고 무효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이어졌고, 결국 재판의 핵심 쟁점은 ‘공정방송’이 파업의 적법한 목적이 될 수 있는지로 모아졌다.

 

법적으로 파업 등 쟁의행위의 목적은 ‘근로조건’에 해당돼야만 합법이다. 하지만 ‘근로조건’이라는 추상적인 언어가 구체적으로 어느 사안을 포괄하는지를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권한이다. 구체적이고 명확지 않은 입법이 남긴 틈을 법원의 해석이 메운 셈이다. 문제는 그 해석인데, 노동계는 근로조건의 범위를 법원이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해 불법파업을 양산한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손배 가압류 사업장인 쌍용차나 한진중공업 노조의 파업은 ‘정리해고’가 근로조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불법이고, 철도노조나 과거 무수한 공기업 노조들의 파업 역시 ‘민영화 반대’가 적법한 목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불법이 됐다. 이 사건들의 판결문에는 모두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공기업의 민영화 등 기업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는 경영주체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2002년 대법원 판례가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김태욱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경영상의 결단이라는 이유로 명백히 근로조건에 영향을 주는 정리해고나 민영화 등을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보다 중시하는 대법원의 해석은 위법적인 법 해석”이라고 말했다. 적법한 파업의 범위가 좁기 때문에 노사가 파업의 목적을 달리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케이이씨와 상신브레이크에선 회사는 타임오프제도 실시와 관련해 유급 노조전임자의 유지가 쟁의의 목적이었다고 주장하고, 노조는 임금 인상이 목적이었다고 맞섰다. 그렇다면 ‘공정방송’은 근로조건에 해당될까. 노동계가 문화방송 파업에 대한 재판을 주의 깊게 지켜본 이유다.

 

 

“공정방송은 가장 중요한 근로조건”

 

1심 판결은 ‘합법’이었다. 지난 5월27일 서울남부지법은 “고도의 공공성을 갖고 방송사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단체협약에서 방송의 절차적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들을 두고 있는 경우, 사용자가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고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남용하여 방송의 제작, 편집 및 송출 과정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단체협약을 위반하여 근로조건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판결했다. 지난 1월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며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 법원의 결정을 재확인하는 판결이었다. 판결문에는 인정사실로 <뉴스데스크>가 이명박 정부의 불법 민간인 사찰 의혹 등을 뒤늦게 보도하거나 4대강 사업의 문제점 등을 다룬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인사 조처 등의 내용이 적시돼 있다. 회사 쪽은 즉각 항소했다.

 

노조 쪽 법무법인 ‘여는’의 신인수 변호사는 “공정방송은 문화방송 구성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근로조건으로, 법원의 이번 판결은 근로조건을 폭넓게 인정했다기보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법원이 1월 회사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을 했음에도 가압류는 한동안 힘을 발휘하다가 노조의 이의신청을 지난 6일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해제됐다. 신 변호사는 “당하는 쪽에선 가압류가 부지불식간에 이뤄지고, 이의신청을 해도 가압류 집행이 정지되지 않을뿐더러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노동 사건에서 가압류 절차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화방송 노조는 “그동안 조합비가 전액 가압류돼 다른 회사 노조에서 돈을 빌려 버티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압류 해제 결정이 나와 다행”이라고 밝혔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504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