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02 한겨레] 사장이 크레인 옆에 올라와 바들바들 떨더라

 

 

[토요판] 손잡고 / 손해배상 가압류의 현장 
(6) 한진중 김진숙과 박성호

 

▶ 손잡고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모임(누리집 주소 www.sonjabgo.org)입니다. 한겨레는 손잡고와의 공동기획으로 매주 손배 가압류의 현장을 찾습니다. 이번에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과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을 만났습니다. 손배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와 현장 제보 받습니다. handinhand@hani.co.kr

 

▲ 지난 7월29일 고공농성 이후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한 김진숙(오른쪽)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과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을 부산시 동구 범일동 민주노총 사무실 앞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고공농성과 단식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 직전 치과를 다녀온 김 지도위원은 잇몸이 완전히 상했고, 위가 안 좋아 아직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했다. 박 지회장은 크레인에 있을 때 모기 물린 곳이 짓무르고 터져 온몸에 흉터가 남았다고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진중공업은 손해배상 가압류에 있어 상징적인 곳이다. 세 명의 노동자가 손배 가압류의 부당함을 외치며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17일 김주익(당시 40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하던 중에 숨졌고, 10월30일엔 곽재규(당시 48살)씨가 세상을 등졌다. 김 지회장은 유서에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잘못은 자신들이 저질러놓고, 적반하장으로 우리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에 고소·고발에 구속에 해고까지”라고 적었다. 그가 받은 마지막 월급은 총액 165만원 중에 가압류 73만원과 각종 공제액을 제외한 실수령액 13만5080원에 불과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인 12월21일엔 서른네살의 젊은 노동자 최강서씨가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세 사람은 죽기 전까지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고, 그 과정에 손배 가압류로 고통을 받았으며 죽기 직전엔 회사의 ‘말 바꾸기’에 절망했다.

 

이들과 인연이 깊은 김진숙(55)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2011년 1월8일 김주익씨가 올랐던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고, 이는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찾아오고 국회에서 한진중공업 청문회가 열리는 단초 역할을 했다. 김 지도위원은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에 대한 부채감으로 크레인에 올랐다”고 말했다. 현재 지회장을 맡고 있는 박성호(51)씨는 2011년 파업 당시 ‘정리해고철회투쟁위원회’ 대표로 85호 크레인 중턱에 올라 ‘중간사수대’를 자임했다. 그렇게 2011년 309일간 진행된 고공농성이 노사합의로 끝난 줄 알았지만, 1년 뒤 최강서씨가 사망했다. 올해 1월엔 부산지방법원이 한진중공업이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에 제기한 158억원 손해배상 청구액 가운데 59억5900만원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고공농성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김진숙 지도위원과 박성호 지회장을 지난 7월29일 부산시 동구 범일동의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에서 만나 얘기를 들었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직후를 제외하곤 언론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 온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겨레-손잡고 공동기획’의 취지에 공감해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해고에도 버티고 구속돼도 
감옥서 나와 투쟁하던 노동자들 
손배가압류 앞에선 무너진다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는 가출 
비극이 되풀이되는 이유다.”

 

노동자 세명이 목숨을 잃고 
손배집행 않기로 약속했지만 
소송을 취하하진 않았다 
“고소공포증인지 떨던 사장 
제 목숨은 중하면서 우린 왜…”

 

 

손배 가압류 아닌 휴업으로 압박한 이유

 

-한진중공업에선 ‘손배 가압류’가 주는 느낌이 남다를 것 같다.

 

김진숙 “자본가에게 손배 가압류는 해고나 구속보다도 좋은 무기다. 노동자는 해고를 해도 어떻게든 버티며 싸우고, 불법으로 몰아 구속을 시켜도 감옥에서 다시 나와 투쟁한다. 그런데 손배 가압류를 걸면 좀 다르다. 가족들의 생계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해고됐다고 이혼하는 가정은 거의 없다. 그런데 손배 가압류가 걸려 이혼하고 아이들 가출하는 가정이 숱하게 많다. 그런 면에서 가정을 파탄내고 인간을 말살하는 것이 손배 가압류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인데, 자본가들이 합법적으로 손배 가압류의 칼을 휘두를 수 있으니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마지막 저항 수단이 목숨이 되고, 비극이 되풀이된다.”

 

박성호 “2003년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열사가 사망하고 손배 가압류가 사회적 쟁점이 됐지만, 11년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손배 가압류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 있구나’라는 것이 처음 알려졌을 때, 좀 더 투쟁해 성과를 냈어야 했다. 그때 입법화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고, 죽어 나가야 입법화가 될까. 비극이 더 생기기 전에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

 

노사정위원회는 2003년 12월18일 “노동계는 법령에 맞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경영계는 위법행위에 대해 민사책임을 묻는 경우에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며, 정부는 손배 가압류의 남용 방지 및 제도의 보완에 최대한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입법적인 변화는 급여에서 가압류를 할 때, 최저생계비를 보장하는 수준의 민사집행법 개정이 2005년 이뤄졌을 뿐이다. 그동안 17대 국회서부터 여러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손배 가압류’에 관련된 입법안들은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잠자고 있다가 폐기되거나, 여야가 이견만 확인한 채 입법화되지 않았다.

 

-올해 1월 부산지방법원이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한진은 여전히 손배 가압류로 어려움을 겪는 중인가?

 

박성호 “회사가 2011년 정리해고 철회 투쟁과 크레인 농성에 15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고, 법원이 그중 59억원을 인정했다. 사실 이번 판결은 노조에 바로 영향을 주진 않는다. 회사가 최강서 열사가 죽고 난 이후 손해배상을 집행하지 않기로 노조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10월 새 사장이 취임한 이후 회사가 노조를 대하는 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다시 영도조선소를 가동하며 휴직자들을 복직시켰고, 사장이 노조 사무실에 찾아와 현안에 대해 상의하는 등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좀 가라앉고 있다.”

 

김진숙 “나는 지금 상황이 왠지 불안하다.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열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에 늘 회사의 말바꾸기가 있었다. 회사가 언론과 여론은 무서워하지만, 노동자들과의 약속은 쉽게 저버린다. 손배를 집행할 의사가 없으면 왜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나.”

 

박성호 “실제로 태도는 좀 유화적이지만, 내용적으론 변한 것이 없다. 어떨 땐 회사가 필요에 의해 노조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느낌도 받는다. 7월 초엔 회사 경영진의 요청을 받아 노동청에 함께 가기도 했다. 회사가 노사관계에 있어 양호하다는 점수를 받으면 정부가 발주하는 특수선 수주에 유리한 가산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산점을 얻으면 수주비용 수십억원을 아낄 수 있다. 회사가 아직까진 손배 가압류를 집행하지 않겠단 약속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협조하겠단 생각으로 따라갔다. 그곳에서도 심사위원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이 ‘회사가 손배 가압류를 집행하지 않겠단 약속을 지키고 있느냐’였다. 그날 노조가 협조를 했지만, 회사는 결국 노동청이 주는 가산점을 받지 못했다. 아직 노사관계가 양호하단 판단을 받을 수준은 아니라고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창조컨설팅 연루 알고서 “그럼 그렇지”

 

-크레인 농성이 끝나고 어느 정도 한진중공업 사태가 일단락된 줄 알았는데, 대선 직후에 최강서씨가 사망해 놀랐다.

 

박성호 “크레인 농성이 끝난 뒤 더 어려운 싸움이 시작됐다. 회사가 사주한 기업별 노조가 2012년 1월 설립됐고,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새 노조에 가입하면 ‘휴업에서 빼주겠다’, ‘생계지원금 1000만원을 우선 지급하겠다’는 선전을 했다. 오랜 휴직으로 생계가 어려운 노동자들이 새 노조로 대거 옮겼다. 지금 한진의 새 노조는 570명의 노조원을 확보해 다수노조의 지위를 얻었고, 기존 노조원은 178명만이 남았다. 기존 노조원들은 대부분 기약 없는 휴직 상태로 생계 유지가 어려웠다. 거기에 회사는 158억원의 손배 가압류를 청구하고, 노조사무실을 빼라고 압박했다. 우리는 그에 대항해 천막을 치고 농성했지만, 크레인 농성 때처럼 언론의 관심이나 연대의 손길이 거의 없었다. 그 상황에서 대선 결과가 박근혜 당선으로 나오자, 더 절망감을 느낀 것 같다. 그때 우리에게 대선 결과는 이명박 정부에서 벼랑으로 내몰린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김진숙 “(최)강서는 노조 활동을 오래한 것은 아니지만, 참 적극적이었다. 고공농성을 할 때도 내가 식사를 거르면 크레인 중턱까지 올라와 ‘누나 밥 안 먹으면 나도 안 먹는다’며 내 건강을 염려했다. 참 순수한 친구였다. 그의 아버지도 한진에서 정년퇴임을 한 강서는 10년을 일한 직장에서 단번에 해고를 당한다는 것을 좀체 받아들이지 못했다. 또 어렵게 복직 약속을 받아냈는데도 들어가자마자 무기한 휴업 통보를 받고, 회사가 노조사무실마저 빼라고 하는 것에 힘들어했다. 사실 노조사무실이 위치한 건물은 2003년 김주익 열사가 사망한 뒤 회사 쪽이 노사화합을 앞장서서 주장하며 지어준 것이다.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은 건물을 회사가 지은 뒤 5층 노조사무실, 3층 신용협동조합, 2층 물리치료실과 매점, 1층 식당 등으로 사용해왔다. 그런데 회사는 2층부터 이 건물을 빼기 시작했다. 물리치료실을 없앤 뒤 그곳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을 내보냈고, 3층 신용협동조합에 이어 5층 노조사무실마저 빼라고 압박한 것이다. 사실 이 요구는 지금도 여전하다.”

 

-한진은 정리해고 실시, 새 노조 설립 시기에 맞춰 창조컨설팅에 10억3400만원을 지급했다. 창조가 연루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김진숙 “전국에 민주노조가 비슷한 방식으로 판판이 깨져나가는 것을 보고서, 어디에 ‘컨트롤타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한진중공업에도 창조컨설팅이 연루됐단 얘기를 듣고, ‘그럼 그렇지’ 하는 심정이었다. 노조를 탄압하는 방식이 이전과 달리 굉장히 치밀했다. 한진의 두뇌로 나올 수 없는 방식이었다.”

 

-손배 가압류로 노조 탈퇴를 압박하지는 않았나?

 

박성호 “한진은 손배 가압류보단 휴업으로 노조 탈퇴를 압박했다. 이미 손배 가압류로 세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 회사가 그걸 무기로 휘두르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휴업도 노동자들에게 무서운 무기다. 휴업을 하면 1년간 평균임금의 70%가 나오지만, 기약 없는 휴업이 대부분이다. 노조를 탈퇴하면 휴업에서 빼주겠다는 회유가 통한 이유다.”

 

 

영도조선소와 수비크조선소의 운명

 

한진중공업 노사관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리해고’다.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의 크레인 농성의 발단은 2002년 650명의 정리해고에서 비롯됐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도 2010년 400명의 정리해고에서 비롯됐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포함해 ‘희망퇴직’을 가장한 퇴직 압박으로 2002년 800여명, 2010년 1300여명을 ‘정리’했다. 2009년 이후 회사가 정리해고의 명분으로 삼은 것은 ‘수주 물량이 없다’였다. 하지만 좀더 엄밀히 말하면 국내에서 성장한 기업이 해외에 큰 공장을 짓고서 국내 공장을 놀리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일 뿐 아니라 ‘국부와 일자리를 해외로 유출하는 기업’인 셈이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한진중공업의 부산 영도조선소는 2008년만 해도 주력사업인 상선부문 가동률이 98.5%에 달했다. 하지만 2009년 가동이 시작된 필리핀 수비크조선소가 생산을 시작하면서 가동률이 줄었고, 2011년 가동률 6.9%에서 이듬해부터 0%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수비크조선소는 2009년 이후 매년 조선건조량 20만톤 이상을 유지하며 지난해 가동률 59.8%를 기록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경제활성화’라는 경제 논리에 의해 정당화됐지만, 더이상 한진은 국내 경제에 보탬이 되는 기업이 아니다. 그들이 벌어들인 돈은 필리핀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제외하곤 극소수의 자본가들에게 귀속된다. 국내 노동자들이 ‘정리’될 때마다 이런 흐름이 가속화된다.

 

-결국 한진의 노사 문제는 자본이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 아닌가?

 

김진숙 “2010년 400명의 정리해고 명단이 나왔다. 이름, 사번, 비고란만 있는 명단인데도 너무 길더라. 한진중공업의 조남호 회장이 과연 저 중의 한 사람에게 어떤 가족이 있고, 어떤 삶이 있을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그 사람들에게 그건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 아닐까. 내가 크레인 위에 있을 때, 당시 이재용 사장이 사다리차를 타고 내가 있는 높이까지 올라온 적이 있다. 그 사람이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난간을 붙잡은 손이 파들파들 떨리더라.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들에게 자기 목숨은 저리 소중하구나. 근데 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은 중요하단 생각을 못할까. 그들에게 노동자란 그저 저 정도의 가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박성호 “새 경영진이 노조에 유화적인 배경엔 올 7월부터 영도조선소가 다시 가동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자들도 이제 일감이 생기니 지긋지긋한 휴업이 끝날 거란 기대가 있다. 문제는 그동안 하도 노동자들을 많이 잘라서 일을 다시 시작하려면 사람이 더 필요하다는 점이다. 회사는 아마 부족한 인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울 것 같은데, 이제 한진에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부산/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http://www.hani.co.kr/arti/SERIES/609/6494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