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7.19 한겨레 토요판] 진보하는 야만에 ‘손 놓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김주익 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은 8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등을 주장하며 고공농성에 들어간 지 129일째인 2003년 10월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 아이의 아빠인 그는 유서에 “아이들에게 힐리스(바퀴 달린 운동화)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적었다. 사진은 김 전 위원장을 추모하는 부산시내 시위 행렬.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손잡고 / 모금운동 시작

▶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리해고를 막으려다,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려다, 노조를 지키려다 불법으로 몰리고 손배 가압류에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억울해서 목숨을 끊는 일도 많았고, 싸우다 지쳐 가압류를 풀어달라고 회사에 통사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는 무력하다며 손 놓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손을 내미는 작은 행동’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이 서로 손에 손을 잡는 시작일 테니까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손 놓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저걸 어째, 그저 안타까워만 할 뿐이었습니다. 속절없이 가라앉는 세월호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명씩 한명씩 손배 가압류에 몰린 노동자들이 죽어가 수십명이 되도록 한국 사회는, 특히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었던 셈입니다. 이미 20여명이 죽어간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47억의 막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판결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아찔했습니다. 얼마나 더 죽으란 말입니까. 지난해 세밑 대학생들이 써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에 울컥했던 것은 대학생들만은 아니었습니다.

 

 

노란봉투로 모은 15억원 
지원자가 예상보다 적었습니다 
구명조끼 부족하던 세월호에서 
자신의 조끼 양보했던 이들처럼 
더 힘든 이에게 양보했던 겁니다 

 

십시일반으로라도 그분들 고통 
덜어드리자는 게 생계비 지원 
법·제도 개선사업 함께 벌여 
19세기에나 있을 법한 야만적 
손배 가압류 바로잡으려 합니다

 

 

누군가 장례를 치러야만 움직여야 할까요

 

배달호, 김주익 이런 분들이 세상을 뜬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눈이 사슴처럼 컸던 배달호에게는 여고생 딸이 둘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한 기억이 납니다. 세상을 등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하는 아버지 김주익의 마음을 짓누른 아이들 ‘바퀴 달린 운동화’(힐리스) 세 켤레 값이 아마 19만3천원이었다지요. 그 여고생 딸들은, ‘바퀴 달린 운동화’를 사 들고 돌아올 아빠를 기다렸던 세 아이는 지난 10년, 안녕들 하셨을까요? 뻔히 보이는데 언제까지 누군가 목숨을 끊은 뒤에야 슬퍼하고 장례 치르고 조의금 모으고 해야 할까요? 돌아가시기 전에 아무리 작더라도 무언가 하나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도 다가오는데 떡국 한 그릇이라도 손배 가압류로 고통을 당하는 분들과 나눠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형님,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오?” 만만한 하종강 선배 귀찮게 하다가 떡국 한번 끓이자고 한 게 뭔가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데로 번져갔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도 못하고 몇몇이 한달 넘게 전화로만 이야기하다 얼굴 한번 보기로 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한겨레> 기자 귀에 잘못 들어가 무슨 사회적 기구가 출범하는 것처럼 덜컥 신문에 나버렸습니다.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시사인>에도 쌍용차 등 손배 가압류 사업장 이야기가 실리고, 그 기사를 본 주부 배춘환씨가 쌍용차에 떨어진 손배 가압류 금액 47억원을 10만명이 4만7천원씩 모아 갚아주기라도 하자며 아이의 학원비를 아껴 4만7천원을 보내왔습니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한 아이 엄마의 4만7천원이 제게 불씨가 됐듯 제 4만7천원이 누군가의 어깨를 두드리길 바랍니다”라고 보내온 가수 이효리씨의 편지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근 15억원, 시민사회에서는 만져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돈이 짧은 시간에 모였습니다. 저 돈을 어떻게 나눌까 꿈에 부풀었지만 막상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4인 가족 석달 생계비 정도로 최대 500만원씩 채 300집도 못 돌리고 나면 그냥 ‘끝~’이었습니다.

 

막상 접수를 받아보니 신청하신 분들이 예상 밖으로 적었습니다. 이 땅에 손배 가압류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가 몇 명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구명조끼가 부족하자 내 거 입으라고 자신의 조끼를 양보했던 아이들처럼, 다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양보했던 것입니다. 참 눈물겨웠습니다. 아직은 버틸 수 있다고 견디시지만 몇 달이나 더 버티실 수 있을는지요. 이미 많은 분이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외람되지만 계속 도와달라는 부탁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회적인 지원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기까지 손배 가압류는 그분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들이 당하는 고통을 십시일반으로라도 조금 덜어드리자는 것이 생계비 지원이라면, 법·제도 개선사업은 19세기에나 있었을 법한 야만적이고 가혹한 손배 가압류 제도의 문제점을 바로잡아 보려는 노력입니다.

 

뜬금없는 얘기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민주화운동을 자랑했던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 찌그러진 것은 노동 따로 시민 따로 민주주의가 따로국밥만 말아 먹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70~80년대 우리 편이라고 해봐야 다 합쳐 한줌 남짓했던 시절,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따로 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이 쬐~끔 좋아지고 우리 편이 쬐~끔 늘어난 다음부터였나 봅니다. 노동과 시민이 따로 가기 시작했지요.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시민운동이 신선한 아이디어로 1인시위를 하면 신문 1면에 사진까지 실리며 기사가 크게 났지만, 아마 그 무렵부터 노동자들이 여의도고 종로고 십만명이 모여 머리띠 두르고 팔뚝질 해봐야 신문에 한 줄도 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85호 크레인에서 목매달아 죽은 김주익의 변호사가 노무현이었습니다. 둘이 한편이었을 때 그들은 승리하여 김주익은 한국 굴지의 대기업 한진중공업의 노조위원장이 되었고, 노무현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둘이 남남이 되었을 때 김주익은 85호 크레인에서 세상을 등졌고, 노무현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시민’의 절대다수가 노동자인 상황에서 노동 따로 시민 따로 가니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될 수밖에요.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망할 수밖에요.

 

 

한홍구 손잡고 운영위원·성공회대 교수

 

김주익과 노무현의 비극을 잉태한 것

 

1970년대 열심히 노동운동 했던 누나 언니들과 얘기하다 궁금한 게 있어 물어보았습니다. 쌍용이랑 한진이랑 수십명 장사 치른 다음이었습니다. 동일방직만 하더라도 젊은 여성들이 옷을 벗어 던지며 싸웠고, 똥물까지 뒤집어쓰며 싸웠던 그 험한 시절에 몇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냐고요. 놀랍게도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만약 듣도 보도 못했던 수십억 손배 가압류가 걸렸다면 어땠을 거 같냐고요. 다들 그걸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냐고 입을 모으더군요. 탈의시위에 똥물사건, 그 시절을 우리는 야만이라 부릅니다. 그때로부터 일제 36년만큼 세월이 더 흘렀건만 그 시절 언니들 또래의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옷 벗고 싸웁니다. 그들의 아들딸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거나 청년실업입니다. 야만도 진보하는 모양입니다. 진보하는 야만에 맞서려면 우리도 ‘손잡고’ 나서야 합니다. ‘손잡고’ 말입니다.

 

한홍구 손잡고 운영위원·성공회대 교수

 

 

 

 

다시 ‘노란봉투’를 모아주십시오

 

손잡고는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의 줄임말입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 손해배상과 가압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모임입니다.손잡고는 ‘아름다운재단’ ‘시사인’ ‘한겨레’와 함께 노란봉투 캠페인을 공동진행합니다. 노란봉투 시즌1은 시민 4만7547명이 참여해 총 14억6874만1745원을 모금했습니다. 노란봉투에 모아준 소중한 희망 가운데 5억2000여만원을 손배 가압류 피해자 137가구의 긴급생계의료비로 우선 지원했습니다. 향후 ‘손잡고’는 2차 긴급생계의료비 지원을 통해 손배 가압류 피해 가구에 시민들의 노란봉투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또 헌법에 보장된 ‘노동쟁의’를 이유로 노동자가 손배 가압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법·제도 개선 활동을 이어갑니다.노란봉투 캠페인은 계속됩니다. ‘손잡고’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노란봉투 시즌2’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란봉투’의 ‘희망’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시민 여러분의 따뜻한 ‘손’으로 손잡고의 활동을 맞잡아주시기 바랍니다. 후원계좌 100-029-977980 예금주 손잡고(신한)손배 가압류 사례 및 현장 제보 handinhand@hani.co.kr※ 후원금은 피해자 생계·의료비 지원, 법·제도 개선,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캠페인, 백서 발간 및 학술연구 등 손배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에 사용됩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75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