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19 미디어 오늘] 해고 통보하던 ‘노란봉투’, 노동자 생계지원 봉투로 4만 7000명의 시민참여로 14억 7000만원 모여… “죽지 않고 힘내겠다”

“하루 이자는 보내드리고 싶은데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식구들 월급도 못 주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렇게밖에 참여를 못하겠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억울한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래도 앞날에 봄날만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힘내세요. 저도 그 힘 보낼테니” “쌍용자동차 아빠들이 저를 구해주었듯이 이젠 저도 우리 아빠들을 위해 제 동생과 함께 작은 힘 보태고자 합니다. 야옹.”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 앞에 수많은 손편지가 붙었다. 가수 이효리,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등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해 화제가 됐던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가한 이들의 편지였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편지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캠페인으로 아름다운 재단과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노란봉투 캠페인의 1차 심사결과가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발표됐다. 애초 1명의 시민에서 시작된 캠페인은 총 3차에 걸쳐 진행됐으며, 111일 동안 14억 6874만원의 모금액을 달성했다. 참여한 사람은 4만7547명이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미화씨는 “기적같은 금액”이라며 “첫 편지를 보낸 분과 이효리씨가 참 고맙다.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씨 역시 모금에 참여했다.


▲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노란봉투 캠페인의 1차 심사결과 발표회에서 쌍용차지부 조합원이 손편지를 읽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캠페인은 손배가압류의 심각성 때문에 시작됐다. 10년 전만 해도 ‘신종 노동탄압 수법’ 으로 여겨졌던 손배가압류가 최근에는 유행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6월 기준으로 사업장과 조합원 개인에게 청구된 손배가압류 금액이 14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캠페인은 이 배상금을 갚는 게 목적이 아니다. 모금을 한들 갚을 수도 없고, 잘못된 판결로 인한 돈이라 갚아서도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손배가압류로 인해 삶이 곤란한 노동자와 가족들에 대한 긴급생계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한다. 지원대상은 노동조합이 아닌 개인이다. 이번 1차 배분 사업을 통해서는 총 137가구가 5억 2000여만 원의 지원을 받게 된다. 지원을 신청한 피해 가구는 쌍용차노조가 95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동우화이켈비정규직지회, 상신 브레이크 등 총 10여개 사업장의 손배가압류 피해 가구가 지원을 신청했다.

캠페인 심의위원장인 김두식 경북대학교 교수는 “피해가구 대부분 지원이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준에 따라 심의를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며 “지원 대상 요건을 충족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기본지급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해고여부, 중증질환으로 인한 치료비 지원여부 등을 고려해 심사했다”고 말했다.

심의단에 따르면 신청사유와 사용계획 1순위는 식비·가스비·월세 등 생활비이고, 병원비, 교육비 등이 뒤를 잇는다. 김 교수는 “피해자 대부분이 무직이거나 일용직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고, 장기간 해고로 인한 스트레스로 병을 앓고 있었다”며 “손배가압류 문제가 노동자의 삶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피해자는 지원금 사용계획에 ‘쌀 20kg 48,000원×12개월=576,000원’이라고 써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19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린 노란봉투 캠페인의 1차 심사결과 발표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손잡고는 앞으로도 2차, 3차 배분사업을 통해 피해 가구를 지원할 예정이며, 손배가압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제도개선사업과 후속 캠페인도 활발히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모금액의 10퍼센트는 법제도 개선에 쓰도록 돼 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손배가압류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지만 (국회에서) 소수가 문제제기 하는 수준에 불과했었는데, 노란봉투 캠페인 덕분에 관심을 많이 받게 됐다”며 “최고의 법률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 문제만은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논의하고 있다. (할 수 없다는) 벽 보다는 이제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고 말했다.

결과 발표회에 참가한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페이스북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금액, 기적이란 두 글자가 아니면 담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따뜻한 마음들이 전국, 전세계에서 모여 절망을 이겨내고 살아갈 기운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죽지 않고 불의에 굴복하지 않겠다. 감사하다. 힘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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