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손잡고’ 출범…500여명 참여
기업의 손배청구액 1691억원 달해
법제도 개선·모금운동 등 벌이기로
“이틀 뒤면 월급날이다. 6개월 이상 급여를 받은 적이 없다. 이틀 뒤 역시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펜을 쥔 손목에는 힘이 들어갔을 것이다.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다. 배씨는 2003년 1월9일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 공장 한편에서 차가운 기름을 자신의 몸에 끼얹었다. 이내 불을 댕기자 기름은 뜨거운 불덩이로 변했다. 그의 나이 50이었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2002년 회사가 산별교섭을 거부하고 단체협상 해지를 통보하자 파업을 벌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회사는 노조에 6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조 교섭위원이었던 배씨도 책임을 나눠 져야 했다. 매달 나오는 임금은 가압류 처분을 받았다. 6개월 동안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했다. ‘65억원’은 그가 평생 모아도 쥐어볼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는 죽음을 택했다.
배씨가 떠나고 10개월 뒤,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이었던 김주익(당시 40살)씨는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목을 맸다. 회사 쪽의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가 원인이었다. 김씨는 유서에서 “손해배상·가압류·고소고발로 노동조합을 식물노조로, 노동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무정책”에 분노했다. 당시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4억원, 가압류는 7억4000만원 규모였다.
최근 법원 판결은 회사 쪽의 이해를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다. 부산지법은 지난 1월17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회사 쪽에 59억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고, 지난해 12월 울산지법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에 90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쌍용자동차 노조는 회사와 경찰에 모두 47억원을 물어내야 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고질적인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 조처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원로들과 정치인, 교수 등 각계 인사와 시민 500여명이 나섰다. 이들은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모임을 꾸려 26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출범식에서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패가망신시킬 정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집계한 결과, 현재 17개 산하 노조에 청구된 손해배상 청구 총액은 1691억원에 이른다.
가수 이효리(35)씨가 쌍용자동차와 철도노조 노동자들을 돕겠다는 뜻을 밝혀 화제를 부른 ‘노란 봉투 캠페인’도 아름대운재단과 ‘손잡고’ 모임이 함께 기획한 모금운동이다. 1만명의 시민이 4만7000원씩 쾌척해 4억7000만원이 모였다. ‘손잡고’는 앞으로 기업들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문제에 대한 인식 확산과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모금운동, 법제도 개선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이재욱 한겨레신문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60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