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10년여 만의 복직 무기 연기…아빠는 머리가 하얘졌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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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 위해 건설현장 일 정리
“가족여행 가려 했는데…”
다시 떠돌이 노동 불가피
“왜 주변까지 힘들게 하냐”
“….”
수화기 너머 중년의 남성은 한동안 말이 없다. 그는 “회사 들어가기 전에 가족들이랑 2박3일로…”까지 말하더니 더 이상 뒤를 잇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쉬었다.
ㄱ씨는 쌍용차 해고자, 다음달 3일이면 10년7개월 만에 공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던 2차 복직 예정자다. 그러나 24일 쌍용자동차와 기업노조는 2009년 사태 이후 공장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47명의 복직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데 합의했다. ㄱ씨의 복직도, 복직을 앞두고 모처럼 떠나려던 가족여행 계획도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ㄱ씨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모친상을 당한 친구를 위로하러 가다 비보를 들었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늦게까지 친구와 함께 있어주려 했는데 부의금만 전달하고 돌아 나왔다. 소주 한 병을 샀다. 성탄 전야를 맞은 두 아이가 신이 나 뛰놀고 있는 상황에서 ㄱ씨는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ㄱ씨는 “가족 모두 기대하고 있었는데, 맨 정신에 얘기하기 좀 그런 것 같더라”며 “얘기를 듣고 나서 애 엄마가 애들보고 ‘방에 들어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올 한 해 전국의 건설현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최근 두세 달 동안은 운좋게 경기도 평택 건설현장에서 일거리를 얻어 집에서 출퇴근했다. 복직을 2주 앞둔 지난 20일, ㄱ씨는 복직을 준비하기 위해 건설현장 일을 정리했다. 남는 시간은 가족과 보낼 생각이었다. 큰딸은 5년 전 가족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동해바다를 떠올리고 “모래놀이가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ㄱ씨가 약속한 2박3일 여행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해졌다.
2009년 ‘파업둥이’로 큰딸이 태어난 이래 ㄱ씨는 좀처럼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해고 후 첫 1년여는 지금처럼 전국의 건설현장을 다니며 날품을 팔았고, 그 후 지난해까지 7년간은 화물차를 몰았다. 매일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왔다. 통 아이들을 보지 못했다.
ㄱ씨가 복직을 기다린 것 역시 안정적인 삶 때문이다. ㄱ씨는 “(아이들에게) 자주 얼굴 보면서 놀러도 가고 하자고 약속을 했다”며 “이렇게 (복직이 연기)되면 생계 때문에 다시 (이곳저곳 떠돌며) 일해야 한다”고 했다. 쌍용차 노사는 휴직기간 중 급여·상여를 70% 지급하기로 했지만 생활을 지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성탄절에 ㄱ씨는 건설현장 일거리를 알선하는 인터넷 카페를 다시 들락거렸다. ㄱ씨는 “딴 지방으로 또 가야 될지 모를 상황”이라며 “상여금이나 월급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안정적으로 지내고 싶다”고 했다.
성탄절, ㄱ씨는 아이들에게 인형 대신 피자를 사줬다. 아내는 기도를 하러 교회에 갔다. ㄱ씨는 “제가 힘든 건 괜찮은데 왜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느냐”며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