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발언에 항의했다가 해고, 두 여자가 멈출 수 없는 이유
[인터뷰] 이은주 원종복지관 해고노동자,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김경히, 홍정훈 기자
10월 4일 참여연대에서 <"여기는 원종복지관입니다" - 2015년 4월 세상을 마주한 두 여자 이야기>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2015년에 일어났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했다. 복지관이 해고된 사회복지사에게, 사업장이 해고노동자와 그 동료들을 향해 쏟아낸 소송의 건수와 액수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토크콘서트에 직접 참여해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행사 이후 10월 7일에 약속을 잡고 당사자인 이은주 전 사회복지사와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를 만났다.
성차별 발언에 항의, 돌아온 건 '갈등 유발자' 낙인
▲ "여기는 원종복지관입니다" - 2015년 4월 세상을 마주한 두 여자 이야기 토크콘서트 현장 ⓒ 손잡고
- 토크콘서트를 개최하게 된 배경을 소개해달라
이은주 : "그동안 바쁘게 살아서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거의 1년여 만에 좋은 계기가 만들어져서 모일 수 있었다. 조재화 선생님이 한 이야기만 기억난다. 조재화 선생님은 자신이 당한 부당해고에 대해 구제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가 '그 소송을 하면 이은주가 계속 싸울 거라 그만 싸우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과 요구가 참담한 조직적 가해로 돌아왔을 때 조재화 선생님이 퇴사하겠다고 했다. 당시 적극적으로 말렸다. 임신한 것을 죄인 취급하는 이곳과 싸우자고 그리고 꼭 사과받자고.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힘을 얻고, 언론에도 보도되면서 사회적 관심을 얻으니 힘들다거나 지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사람, 내가 수년간 수많은 재판을 치르는 모습을 보는 조재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아팠다. 나는 지금 '형틀목수'로 일한다. 그날도 토크콘서트에 일을 마치고 갔다. 너무 피곤했다. 괜히 분위기가 축축 처지는 것만 같았다."
- 2015년 부천 원종종합복지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이은주 : "2015년 4월 16일에 조재화 선생님이 임신했다고 얘기했다. 부장이 그 말을 듣고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라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 팀워크가 좋아 조재화 선생님을 돕기 위해 팀원들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부장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서 사과받을 방법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그런데 우리가 관장에게 직접 문제를 제기하기로 한 것이 조직의 직급체계를 허무는 중대한 문제로 취급당했다. 당시 팀장도 '부장을 거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 모두 사표를 써야 한다. 적어도 나는 무사하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두고 전체직원회의를 열었는데 나로 인해 조직문화가 무너졌다는 말도 들었다. '조직에 피해를 준 사람이 가해자다', '임산부도 가해자다'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나왔다. 내부의 절차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요구 조건을 걸고 외부에 공론화하기로 했다. 당사자들에게 불이익 조치를 하지 말 것, 인권 침해적이며 성차별적인 발언에 대해 사과할 것 등을 요구했다."
- 그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됐나
이은주 : "원래 부천 지역에서 시민단체 일을 했었는데 모 시민단체 대표의 소개로 관장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원종복지관에 2014년 8월에 입사하기로 하고 기존에 하던 일들을 모두 정리했다. 그래서 출근 첫날 계약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상대방 측도 법정에서 내가 일은 잘했다는 걸 인정했다. 지역방송에도 관심 가질 정도로 역동적으로 사업이 날개 돋친 듯이 잘 풀렸다. 사건 당시 두 개의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을 진행했다. 그중 부천시 공모사업에서 최우수상도 받고 8~9월까지 공모사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2015년 7월에 계약 해지를 통보서를 받았다. 3월에 관장에게 내부 예산 승인까지 받은 사업계획서가 폐기됐다. 원종복지관의 숙원사업이었고, 외부에 대표사업으로 홍보할 만큼 잘 진행되고 있던 대장동 주민조직 사업 등도 모두 폐기됐다. 그러고 나서도 공모사업의 경우 돈을 토해내야 하는 문제 때문에 9월부터 마을에 들어가서 일했다. 선출직인 주민협의회 사무국장을 1년 동안 맡았다. 농촌 마을이라 주민 대부분이 70~80대여서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 부장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 '손잡고'는 어떻게 당사자들과 연결되었나? 당사자의 사안에서 특별히 주목했던 부분이 있었는가
윤지선 : "손잡고가 당사자 두 분과 연결됐던 계기는 '2017년 제기된 손배소송'이었다. 상황이 더는 당사자들의 힘만으로 풀리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조재화 선생님은 산재를 신청한 시기였고, 이은주 선생님은 형사소송까지 감당해야 했던 시기였다. 대기업에서도 볼 수 없는 규모의 소송이 작은 사업장에서 이렇게나 많이 제기됐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원종복지관 대책위원회 관계자에게까지 소송을 걸었다. 당사자를 괴롭히기 위한 방식으로 연대했던 동료, 시민들을 중심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게다가 부천 지역 안에서 당사자 두 분이 고립되어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원종복지관은 하나의 사업장이지만 책임자가 지역에서 미치는 영향은 컸다. 단적으로 원종복지관의 백서에 '나는 지역에서 노동·사회운동을 30년을 한 사람이다'라는 문장도 들어있다. 대책위 차원에서 사회적 대화를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원종복지관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가려내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재판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다."
- 계약 해지를 당하고 나서 어떻게 대처했나
이은주 : "계약해지가 되고 나서 곧바로 조재화 선생님과 같이 민주노총의 일반노조에 가입했다. 그리고 우리를 지지하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대책위를 꾸렸다. 복지관을 운영하는 법인의 책임자는 끄떡없었다. 금요일마다 108배를 했는데도 꿈쩍도 안 했다. 피해자들을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으로 몰았고, 고소·고발을 수차례 했다. 처음에 관장은 부장을 옹호했다.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라는 부장의 발언이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된 농담이었다고 했다. 문제의 발언을 한 부장이 우리가 공론화하고 여론화된 후 시말서를 썼다는 걸 알았다. 그제야 부적절한 표현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그런데 말로만 시인했을 뿐 사과문을 게시하지도 않았고 사과문을 요구한 우리에게 서면으로 줄 수도 없다고 했다."
윤지선 : "처음에는 이은주 선생님의 해고 사유가 계약 기간 만료였다. 그런데 이후부터 조직을 해쳤다는 '괘씸죄' 등을 언급했다. 이은주 선생님이 추진한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이 최우수상까지 받았던 상황이었기에 당사자에게는 계약갱신 기대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공모사업 예산도 향후 1년 치까지 편성되어 있었다. 복지관 측은 소송에서 채용공고에 계약직을 명시했다고 설명하나, 이은주 선생님은 지역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일자리를 추천받을 당시에는 계약직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당사자는 복지관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기 위해 모든 일을 접고 출근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신이 계약서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임신과 출산에 대한 발언 이전에도 면접 과정에서부터 성차별 발언이 있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당시 조직문화가 어떠했는지 설명해달라
이은주 : "관장은 나를 조직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눈 '갈등유발자'라고 했다. 부장이 한 인터뷰에서 복지관의 조직문화를 설명한 적이 있다. '다른 직원들은 본인을 배웅할 때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서 인사하는데, 이은주는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상상이 되지 않나? 이러한 문화 속에서 이 질서에 파열음을 내는 사람은 조직분란자로,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사람으로 찍힐 수밖에 없다."
윤지선 : "처음 출근한 자리에서 상사가 이은주 선생님을 향해 '처음부터 당신의 채용을 반대했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재화 선생님을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둘째 아이를 출산할 계획이 있냐'고 물어본 전례도 있었다. 당사자는 아이를 핑계 삼아 업무시간 외 근무 또는 회식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면 미리 일 못 하겠다고 말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휴직 중인 후원 담당자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던 와중에 고액 후원자를 대하는 업무라는 설명을 듣고 술자리에 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왜 이렇게 군살이 없어'라는 말도 들었다.
당시 상사에게 그 문제에 대해 말했더니 '선생님이 예뻐서 그런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재화 선생님은 그런 조직의 분위기 속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소용없겠다고 생각했다. 민소매, 청바지를 입고 출근했다는 이유로 복장을 지적하고, 온라인 대화방에서 이모티콘을 쓰는 것까지 문제 삼았다. 끊임없이 자기검열에 시달렸고 상대적으로 작은 일로 문제 삼으면 조직 내에서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워했다. 결국 둘째를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돌아온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라는 말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 조직의 분위기 속에서 당사자에 대한 2차 가해도 굉장히 심각했을 것 같다
윤지선 : "이은주 선생님이 해고되고 난 이후 조재화 선생님이 육아휴직이 끝나 잠시 복귀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사자가 복직했더니 부장과 다른 건물에서 일하던 자리에서, 부장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자리로 배정을 받았다. 심지어 당사자가 참여하는 복지관 내부 회의에서 이은주 선생님과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어떻게 소송을 제기할 것인가를 논의하기도 했다. 당사자는 차마 그 회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직장 부적응자라고 다시 낙인이 찍혔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업무 중 발작으로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그 경험이 산재 신청을 한 계기가 됐다. 우울장애 진단까지 나왔는데 사측은 가정불화와 산후 우울증이라며 진단 결과를 외면했다. 정신적 문제는 산재로 인정받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닐까. 한국의 산재가 인정되는 사례 자체가 희박하다 보니 그마저도 기각당했다."
이은주 : "당시 가해를 가했던 사람들은 모두 승진했다. 관장과 부장, 과장은 복지관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같이 일했던 사이다. 우리에게 제기됐던 소송의 원고도 일반 직원들이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었는지 젊은 사람 몇몇이 그만뒀다. 그렇게 그만둔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다. 그중의 한 명에게는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더니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주기도 했다. 법정에 나온 증인은 '소송비용에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 계속하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사안을 처음 보도했던 기자도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힘들어했다."
윤지선 : "그분이 조재화 선생님에게 가해진 성차별 발언도 농담이 아니었다는 증언도 해줬다. 법정에 나섰다는 이유로 당시 관장으로부터 내용증명까지 받았고, 원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 당사자와 대책위에 제기된 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윤지선 : "피해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차별·성폭력 피해자임이 명백한데도, 인권위에 넣었던 진정이 기각된 이후 좋지 않은 상황들을 겪었다. 쉽게 말하자면 법원은 인권위 결정 이전에 한 행위는 문제가 없다고 해석했으나, 인권위의 기각결정 이후에 한 행위에 대해서는 문제 삼았다. 인권위는 이은주 선생님의 경우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라는 문제 제기가 가능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 조재화 선생님의 경우는 성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해 적절한 시정조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했다. 불행하게도 사측이 인권위의 기각 결정을 많은 소송에 이용하면서 이후 재판 과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인권위 결정 직후에는 그 결정을 기준으로 유죄 판단된 재판도 있다. 상대측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고 싶어서 임산부를 선동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은주 : "소장에 실제로 나와 있는 표현이다. '임산부를 이용해서 계약을 연장하려고 했다.'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던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진행됐던 형사소송은 무혐의 처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소송에서는 무죄까지 나왔다. 갱신기대권이 있는 상황에서 보복성 해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인용되기도 했다."
- 소급적용이 되지 않고 처벌 규정이 없는 것은 여전히 아쉽지만, 이번에 개정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제2의 이은주, 조재화가 보호받을 수 있을까
윤지선 : "관장은 '문제의 당사자가 부장인데 왜 자신한테 책임을 묻나'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서도 대표자의 책임을 명확히 한 이유는 조직 내에서 일어난 갈등은 최고 책임자가 주체가 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했던 행위들이 현재 기준에서는 명확히 잘못이다. 일단은 소송까지 제기할만한 사안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소송 자체를 취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당사자들은 진작 복직을 포기했다. 복직까지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상 투쟁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조재화 선생님까지 법인의 이사장 이름으로 소송당하는 것은 결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명예훼손 관련한 손배소송 같은 경우 수억 원대의 인지대가 발생하는 문제도 있다. 소송이 진행되기 전에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침해의 요소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손해배상소송이나 가압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노란봉투법'이 꼭 통과되어야 하는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도 매우 아쉽다. 당장은 소송에 필요한 법률기금 모금을 공론화와 함께 진행하려고 한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이은주, 조재화와 같은 당사자들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으로 생각한다.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당사자들이 겪었던 사례를 통해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명시한 사측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도 반드시 이 사건을 되짚을 필요가 있다."
- 지난한 소송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은주 :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 문제만 알리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우리 문제를 통해서 다른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작년에 올해와 비슷한 모임을 꾸리고 토론회를 열어서 이 사건에 대해서 정리했다. 소송을 당하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은 이유는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저들의 언어'로 기록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다 해봤다. 하지만 딸이 재수했는데도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온 그 힘들었던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 그동안 너무 나를 돌아보지 않으면서 살았다고 반성했다. 육체노동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싶었다. 해고를 당한 이후에 돈을 벌지 못해서 끊겼던 수입을 보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고, 밤에는 치킨집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
이은주 : "오래 싸웠다고 해서 후회하거나 만신창이가 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재화 선생님과도 앞으로 우리 잘살자고 했다. 이번에 준비했던 행사도 원래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 여자의 이야기'였다. 조재화와 이은주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와주었던 전 동료까지 총 세 여자. 우리는 서로의 상황에 대해 직접 묻지는 못하고 미안해하기만 한다. 조재화 선생님이 처음 메일을 보낸 날이 2015년 4월 16일이었다. 복지관 안에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메시지가 있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 뒤로 싸우는 과정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우리가 겪은 일도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인 조직문화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싸우기 위한 언어를 얻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겪었던 일들은 우리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세 여자는 작은 순간에서도 서로가 멋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곤 했다. 각자가 현재 서 있는 모습, 지금의 여자들을 만난 것으로 만족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우리가 힘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