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해고노동자가 ‘10년 만에 복직’에도 웃을 수 없는 까닭
한겨레 /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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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노동자 119명 중 지난해 71명 복직
남은 48명은 내달 1일 ‘무급복직’ 하기로
“사원증이라도 걸어야 희망 가질 수 있어”
국가가 낸 수십억 손해배상 소송도 ‘족쇄’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가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갑을 끊어내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투쟁 10년 만에 회사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지난 20일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쌍용자동차 기술직 신체검사 일정 안내’라는 문자메시지 캡처와 함께 글을 올렸다. 김 지부장은 다음날에도 신체검사를 받던 다른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이제야말로 (복직이) 실감이 나네요”라고 말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10년 만에 회사로 돌아가지만, 이들은 온전히 기쁘지 않다. 복직은 했지만, 국가와 회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로 공장에서 쫓겨났던 쌍용자동차 노동자 119명 가운데 김 지부장을 포함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던 48명이 오는 7월1일자로 복직한다. 앞서 지난해 12월21일 71명은 먼저 복직했다. 지난해 9월14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재로 노사 합의가 타결돼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자동차노조, 회사는 복직 대상 해고자 119명 중 60%를 2018년 연말까지 채용하고, 나머지 해고자를 2019년 상반기에 단계적으로 채용하겠다고 합의한데 따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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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수갑’이 풀렸지만, 이들은 일상으로 완전하게 돌아가지 못한다. 김 지부장을 포함해 7월1일 복직하는 48명은 사원증만 목에 걸게 될 뿐, 라인 배치를 받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무급복직’이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노사가 전원 복직으로 합의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선별복직이 이뤄져 왔다. 회사에서 지난해 12월31일자로 71명을 먼저 들여보내고 나머지 해고자들에게 기다리라고 이야기했다”며 “노조는 기간 내에 전원 복직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고, 대신 한발 양보해서 무급이라도 신분 회복을 먼저 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원증이라도 걸어야 우리가 희망을 갖고 기다릴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라고 경위를 설명했다.
‘정리해고 수갑’ 보다 더 단단하게 쌍용차 노동자들을 옥죄었던 건 ‘국가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이었다. 경찰은 2009년 파업 진압에 투입됐다가 파손된 헬기, 기중기 등을 배상하라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법원은 2013년 1심에서 14억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2015년 2심은 11억676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지연이자까지 합하면 배상금액은 25억원에 이른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로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은 임금, 퇴직금, 부동산 등을 가압류당했다. 2019년 2월1일 법무부의 조치로 복직 노동자 26명의 가압류가 해제됐지만,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복직자와 희망퇴직자 등 14명의 가압류는 여전하다. 쌍용자동차가 노조파업으로 손실을 봤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여전히 2심이 진행 중이다. 2013년 1심은 지연이자 연 20%를 포함해 약 76억원을 금속노조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가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와 회사를 향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는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리해고 수갑’은 풀렸는데 ‘국가폭력 수갑’은 그대로”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장석우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이 헌법에 명시된 집회시위의 자유, 노동 3권을 행사했는데 국가가 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가”라며 “대부분 손해배상 대상이 헬기, 기중기인데 파업 진압에 과연 헬기, 기중기 투입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적정한 공권력 행사냐. 이는 이미 작년에 경찰청 진상조사위에서 비례원칙을 위반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라는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장 변호사는 “피해가 있었다면 노동자가 아닌 애초에 엄청난 장비를 투입한 경찰이 배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8월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쌍용자동차 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경찰과 정부에 “공권력 과잉행사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취하하고, 사과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현재 가압류가 남아있는 쌍용차 노동자 채희국(48)씨는 “지난 4월3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2009년 이후 손배 가압류로 겪었던 개인의 아픔과 가족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 했다”며 “하지만 경찰은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다. 저와 가족은 1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투명한 철창으로 만들어진 손배 가압류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다. 이런 절박함이 경찰청에 전달돼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24일부터 매주 평일 1시간 동안 경찰청 앞에서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과 손해배상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