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손잡고 창립 10주년 맞아 ‘손잡고 장학사업’ 시작

[보도자료]

손잡고 창립 10주년 맞아 ‘손잡고 장학사업’ 시작

-.노동열사 유구영 씨 가족들이 종자금 기탁

-.1회 장학금,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해고노동자 자녀 지원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대표 박래군)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손잡고 장학사업을 시작한다.

   손잡고는 지난 2014년 2월 26일, 노동권을 행사한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에 휘말려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법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출범한 이래, ‘노란봉투캠페인’과 같은 시민캠페인 및 피해자지원, ‘노란봉투법’, ‘괴롭힘소송금지법’ 등 법제도개선 활동 등 다양한 노동권 개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손잡고 장학사업’은 손잡고의 지난 10년 활동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 자녀들의 꿈을 지원하고자 한다.

   특히 손잡고 장학사업은 노동열사 유구영 씨의 가족들이 종자금을 마련해 의미를 더했다. 열사의 가족들은 손잡고에 기금을 보내며, “노동권을 위해 열심히 싸우다 탄압받은 노동자의 자녀들이 정작 부모의 활동의 가치와 의미를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점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나아가 “투쟁하는 노동자의 가족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경제적 곤란을 겪는 손배노동자 자녀들의 '꿈'을 지원하고자 한다”는 바람과 함께 매년 200만 원을 기탁한다고 전했다.

   손잡고는 제안에 화답하며 유구영 선생의 가족들이 기탁한 장학금을 기반으로 더 많은 손배 노동자의 자녀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매년 장학금 목적으로 별도의 후원금을 모집한다. 장학사업에 후원된 금액은 손잡고 창립일인 매년 2월 26일에 맞춰 전액 장학금 목적으로 손배노동자 자녀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1회 손잡고 장학사업 장학금은 손배가압류 노동현장 가운데 올해로 10년째 해고기간을 보내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 자녀 2명에게 각 100만원 씩 지원한다. 

*손잡고 장학사업 후원 문의 - 손잡고 sonjabgo47@gmail.com

*손잡고 장학사업 후원 계좌 – 신한은행 손잡고 100-030-265015

 

 유구영 열사 약력 

 

1957년 12월 22일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출생

1976년 청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입학

1978년 11월 9일 교내 시위 주도 후 도피, 수배, 대학교 제적

1979년 3월 9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 체포, 징역 4년 6개월 선고

12월 8일 긴급조치 9호 해제, 형집행면제 석방

1981년 고려대학교 졸업, 한신대학 신학대학원 입학,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KSCF) 학생간사

1982년 청주시 소재 보성금속 입사

1984년 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KC전기 입사

1985년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교육간사

1986년 전국노동자연맹추진위원회(전노추) 사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배

1987년 서울노동조합운동연합(서울노련) 노조결성지원 담당

1988년 영등포기계공단 소재 대한중전기 입사

1989년 영등포기계공단노동조합(영공단노조) 결성, 영공단노조 사무국장

겸 대한중전기 분회장

1990년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 선봉대장

1991년 서노협 정책실장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전노대) 정책실

1994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준비위원회[민주노총(준)] 정책위원회

1995년 민주노총 정책부국장

1996년 5월 2일 간암 투병 중 사망(만 38세)

 

1957년 11월 2일 충북 오창에서 출생한 고 유구영 동지는 1976년 고려대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유신체제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였고 1981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82년 보성금속, KC전기에 근무하 면서 노동자들의 현장조직화를 위해 힘썼으며 현장생활의 와중에서도 청주직업훈련원 전기과를 야간으로 이수하였다. 영등포 산업선교회 교육간사, 영등포 기계공단노조 사무국장, 대한중전기 분회장을 거치는 동안 동지는 민주노조운동을 일궈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였다.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지역적 연대를 위해 1990년부터 2년여 동안 서노협 선봉대장을 말았다. 유구영 동지는 탁월한 조직가이면서 동시에 인기 있는 교육가였다. 1993년 서노협 정책기획실장을 맡아 노조 운동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영역인 섬유와 유통, 영세사업장의 조직화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사무국장을 지낸 영등포 기계공단노조는 공단 내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로 구성된 지역노조였다. 활동비 한번 제대로 못 받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동지는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운동에 대한 낙관과 일에 대한 열정, 자상한 선배이자 동료로서 근성 있는 불굴의 활동가상을 보여주었다.

   간암 선고가 내려지기 전날 밤에도 민주노총의 핵심적 과제 중의 하나이면서 최대 관심사의 하나였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을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동지는 민주노총의 정책기획국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꿈에도 염원하는 민주노총 건설이 실현되고, 자신의 땀이 밴 그 조직이 이제 막 새롭게 활동을 펼치려던 1996년 5월 2일,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한 동지들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벽 2시 25분경, 서른아홉 살의 짧은 생애로 운명하였다. - 고 유구영 동지 묘소의 약력 소개

 

 유구영 열사 유가족 편지 

 

안녕하세요. 고 유구영 열사 유가족입니다.

유구영 열사가 떠난 지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열사가 떠나던 해에 중고등학생이었던 자녀들은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겼습니다.

   유구영 열사가 떠나고 막막했던 시간에 만난 따뜻한 위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료를 위해, 억압받는 노동자를 위해 사셨던 유구영 열사를 기억해주셨던 분들이 건네주신 응원에 우리 가족은 희망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응원을 이제 나누고자 합니다. 함께 살자고 나섰던 정의로웠던 걸음이 손배소로 돌아와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계실 손배노동자와 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와 응원을 전합니다.

   특별히 자녀분들에 대해 지원하기로 한 것은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올곧은 부모의 삶을 긍정하고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유가족이 그러했듯, 응원과 위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따뜻하고 굳건해지시길 소망합니다.

 

저희도 늘 꿈꾸며 더 굳건히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2월 26일

유구영 열사 유가족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