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노동자 손배소 1심 선고에 대한 규탄 성명]
래커스프레이에 가려진 건 노동권과 집회시위의 자유다
지우면 되는데 도로를 갈아엎은 아사히글라스가 손괴 책임자다
‘래커스프레이를 지울 수 없어 도로를 갈아엎‘는 희대의 황당한 손배청구에 대해 사법부가 4년이나 지나서야 결론을 냈다.
14일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민사2단독(판사 최유빈)은 아사히글라스가 노동자에게 제기한 5,200여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도로손괴와 관련해 384만원 배상을, 나머지 명예훼손 등 주장에 대해서는 기각을 선고했다.
384만 원은 전문감정인이 아스팔트 접착용 도료, 아세톤 등을 통해 실험해 도출한 제거비용이다. 결국 도로를 갈아 엎을 이유가 없음에도 아사히글라스 측이 무리하게 도로를 갈아엎고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뒤집어 씌운 셈이라는 것을 재판부도 인정한 것이다.
아사히글라스가 제기한 손배소는 손배제도 남용 사례의 전형이다.
‘래커스프레이를 아세톤 등으로 지울 수 없어 도로를 갈아 엎었다‘는 사측의 주장만으로 재판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4년이라는 재판기간동안 왜 도로를 갈아엎어야만 했는지 회사는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또한 회사는 ‘전범기업 아사히‘라는 문구가 모욕감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전범기업 아사히‘를 다룬 국회 국정감사나 mbc를 비롯한 언론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해고한 노동자들과 연대 시민 개개인을 대상으로만 ’분풀이‘한 셈이다.
아사히글라스는 ’아사히는 전범기업‘, 불법파견 철폐하라’는 등의 문구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권리를 침해당한 건 노동자들이다. 아사히글라스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공장 밖에서 벌어진 평화로운 집회시위의 자유마저 침해했다.
사법부 역시 무리한 손배소 남용에 동조했다. 1심 재판부는 황당한 손해주장을 검증하는 데만 4년을 들였다. 이는 손배소송 아카이브에 기록된 노동사건 손배소송의 평균 1심 소송기간인 26개월보다도 두 배 가까운 시간이다. 해고 9년차 노동자들에게 가해진 4년의 경제적•정신적 고통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으며, 노동자들은 승소한들 소송기간 겪은 고통을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이같은 사실을 재판내내 호소했음에도, 4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낸 재판부 역시 지탄받아 마땅하다.
정부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아사히글라스의 비정규직 해고와 손배는 우리가 노란봉투법을 통해 바꾸고자 했던 부당한 현실의 사례 중 하나다.
손배 대상이 된 노동자들은 9년 전,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자 한 통‘으로 해고됐다.
비정하고 치졸한 방식이라는 여론의 지탄에도 아사히글라스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수년을 함께 일한 노동자를 모르쇠했다.
정작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행사한 이유는 파견법 위반, 부당노동행위, 작업장 안전문제, 비정규직 일자리 차별 등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행위‘에 있다. 이러한 기업의 불법은 고용노동부에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 노동청은 일찌감치 직접고용시정명령을 내리고 강제이행금을 부과했으나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9년이 흐르는 동안 정부는 무력했고, 지금까지도 노동자를 보호하긴커녕 방치하고 있다.
검찰도 ‘기업의 불법행위‘ 앞에 무능했다. 파견법 위반 등 기업의 불법을 인지해 기소해 1심에서 이례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반전되는 주장이 없었음에도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굴욕을 겪었다.
아사히글라스를 상대로 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가 겪은 9년의 투쟁은 회사만이 아닌 무능한 정부, 노동권을 방치하는 사법시스템과의 투쟁이 되었다. 이같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요구는 한결같았다.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단 하나의 요구를 회사는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스스로 ’거부권‘을 통해 허용한 게 무엇인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전범기업 아사히글라스가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무참히 짓밟도록 허용한 건 다름아닌 윤석열 정부다.
노란봉투법을 통해 2조가 개정되었더라면,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과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노란봉투법을 통해 3조가 개정되었더라면, 손해를 입증못한 무리한 소송을 4년이나 겪는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권리를 빼앗긴 건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노동자 뿐만 아니다.
국민은 ’대화‘를 통해 건강한 노사관계를 획득할 단체교섭권을 빼앗겼고, 기업의 불법에 저항할 단체행동권을 빼앗겼다. ’거부권‘하나로 헌법이 유린된 역사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심판할 것이다.
무엇보다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형사소송에 무너지지 않고 ’직접고용‘될 때까지 노동자의 곁에 서서 빼앗긴 권리를 함께 되찾을 것이다.
2023년 12월 14일
손잡고, 전국금속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