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화물연대 파업’을 전시에서 빼라는 서울도서관의 예술검열 사건에 대한 입장문]
12월 29일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관장 오지은)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서울아트책보고>(고척돔)에서, 전시 배경에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 파업”이 언급되었다는 이유로 진행 중이던 포스터와 팜플릿 등 전시물을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홈페이지에서 홍보물을 내리고, 전원을 꺼서 아카이빙 영상을 볼 수 없도록 조치한 예술검열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도서관의 예술검열 사건은 <서울아트책보고> 내 입주서점인 ‘자각몽’ 세션에서 발생했다. <서울아트책보고>는 서울도서관이 민간업체에 위탁운영하고 있는 국내 최초 아트북 기반 공공복합문화공간으로 지난해 12월 14일 고척스카이돔 지하 1층에서 개관했다. 바로 이러한 예술공간에서 전시물을 검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도서관 담당 과장이 “예술과 노동” 주제의 전시를 검열을 하면서 문제 삼은 단어는 전시 기획의 사회적 배경으로 언급된 “이태원 참사”와 “화물노조 파업”이었다. 12월 30일 서울도서관 지식문화과 과장은 자각몽 대표와 전화 통화에서 “이태원 참사”와 “화물노조 파업”이 “사회적 논란의 소지”나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제라서 공공기관인 <서울아트책보고>에서 전시할 수 없다고 하였다.
담당 과장은 전시를 하지 말라는 결정을 자신이 하였다면서, 문제 제기하는 서점 대표에게 사과를 하기는커녕, “사전에 충분하게 검토해서 걸러내지 못한 것은 서울아트책보고의 불찰”이라며 사전 검열을 하지 못한 책임을 수탁업체에게 떠넘겼다.
12월 30일 자각몽 대표와 전시 피해자 측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서울아트책보고>는 아무런 상의도 없이 전시물을 다시 일방적으로 복구하였다. 이날 오후 피해자측에서 서울도서관을 방문하여 도서관장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도서관장은 면담을 거부하고 외근 후 퇴근해버렸다. 당일 <서울아트책보고>는 피해자측의 요청에 따라 <서울아트책보고> 직원들은 홈페이지에서 전시 홍보물을 다시 게시하였다.
그런데 12월 31일 서울도서관 지식문화과 과장의 지시로 <서울아트책보고> 측에서 전시물을 다시 철거하고 홈페이지에서 홍보글을 삭제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도 서점 대표나 전시 피해자측과는 아무런 협의나 통보조차 없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소재”,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특정 예술인들을 배제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기준으로 특정 예술인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며, 문화국가의 원리, 표현의 자유, 평등권, 문화의 다양성·창조성·자율성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 파업이 정치적, 사회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전시를 할 수 없다는 서울도서관 담당 과장의 발언은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기준으로” 특정 예술인을 차별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한다. 다양한 견해가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은 예술의 존재 이유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요체에 해당한다. 서울도서관 담당 과장이 하였던 행위와 같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금지하기 위해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예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가 설치된 것이다.
그런데 서울도서관 담당 과장은 전시 내용이 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 파업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담당 과장은 전시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전달받은 자료에서 ‘이태원 참사’나 ‘화물연대’라는 말을 보았고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판단의 견해가 있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수탁업체를 통해서는 “노동”, “민주노총” 같은 단어도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열을 받은 전시는 2022년 시민단체 손잡고와 (재)공공상생연대기금이 공동주최하여, 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이 민주노총, 전교조, 전공노(전국공무원노동조합)를 3대 종북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 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한 공작을 펼친 행위, KT노동조합 선거에서 온건파가 당선되도록 개입하여 공작을 펼친 사건 등을 다룬 모의법정 형식의 문화행사 <공개법정-“우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입니다”>의 아카이빙 자료 전시”(`22.12.29.~`23.1.14.)였다.
서울도서관은 도서관법 25조, 서울시 도서관 조례에 따라 설치·운영되는 서울특별시 광역대표도서관으로, 1천 개가 넘는 서울시 도서관의 다양한 시책을 만들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도서관은 이번 예술검열 사건을 깊이 반성하고 공개 사과, 책임자 문책,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검열의 사유로 거론한 이태원 참사 유족들과 화물연대 노동자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가 책임있는 대화를 통해 조속히 해결되기를 희망한다. 서울도서관이 계속해서 수탁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더 강력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으며, 사태가 계속해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경고한다.
2023년 1월 2일
자각몽/공개법정/손잡고
<참고> 전시 철거 전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