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억의 올가미…전태일 살았다면 손배가압류 노동자 됐을 것”
이재호 전광준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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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의 사업장 23곳 손배소송 58곳
현 정부 출범 때보단 줄었지만
비정규직 등 약한 노동자들 고통
“실태조사·손배가압류대책 마련을”
봉제노동자들, 문 대통령에게 편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등 촉구
윤지영 변호사(오른쪽 마이크 든 이)가 11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2020 노동자 손배가압류 현황발표 기자회견’에서 지난 3년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노동자 손해배상 관련 현황을 발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국도로공사는 김천 본사점거 과정에서 현관문, 화분, 집기 등을 훼손한 박순향 외 13명에게 1억36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함.’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이 지난해 10월 법원으로부터 받은 손해배상 소송 통지서다. 지난해 정규직 전환을 두고 대량 해고를 당했던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지난한 투쟁을 마치고 지난 5월 일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회사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손배소)은 여전히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박순향 부지부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김천 본사에서 석달 가까이 투쟁했던 노조원 중 15명가량은 경찰 조사를 받고 50만~100만원까지 벌금을 낸 경우도 있어요. 손배소를 통해 노동자를 억압하려는 조처지만, 회사 안에서 소수노조에 속하는 톨게이트노조는 교섭력도 없어서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습니다.”
쟁의행위에 따른 손배소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전태일 50주기를 앞둔 11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 누적된 손배소에 대해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노동탄압을 위해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손을잡고’(손잡고)가 파악한 내용을 보면 2020년 11월 현재 노동자에 대해 손배소가 진행되고 있는 회사는 모두 23개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58건에 소송액은 658억원에 이른다.
특히 특수고용노동자·비정규직 등 미조직되거나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손배소 폭탄’에 신음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인 2017년 6월(손배·가압류액 1867억원, 24개 사업장, 65건)과 비교하면 손배소 금액은 1200억원 이상 줄었다. 하지만 이는 금속노조와 철도노조 등 상대적으로 노조의 힘이 강한 조직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손배소가 취소된 ‘착시효과’라고 손잡고 쪽은 설명했다.
손잡고 윤지영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손배소 대상이 정규직 노조였다면 지금은 특수고용노동자, 노조원 개인을 상대로도 회사가 청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손배소 사유도 업무방해 손실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 등으로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전태일 열사가 살아 있었다면 손배·가압류 노동자가 됐을지 모른다. 지금 기업이 돈으로 노동자를 탄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청계피복노조 50주년 공동행사 준비위원회’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버들다리) 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전히 열악한 봉제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렸다. 홍은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부지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낭독하며 “전태일 선배가 일했던 때처럼 사장이나 관청이 강제로 일을 시키지 않지만 여전히 봉제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근로기준법 11조 개정(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노동조합법 2조 개정(모든 노동자 노조 설립 권리 보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전태일 3법’의 입법을 촉구했다.
이재호 전광준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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