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4 경향신문] 톨게이트 노동자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톨게이트 노동자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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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5240850001&code=940100#csidx8ceaf8369d0681ebe77bc2d5b49320e 

 

법원 판결로 정규직 전환됐지만 수납업무 아닌 위험하고 고된 부서로 발령
 

지난 5월 15일 한국도로공사는 2015년 이후 입사자를 포함한 1심 계류 중인 요금수납원까지 직접 고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법원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은 입사연도와 관계없이 한국도로공사 직원이 맞다고 판단하면서다. 법원 판결에 따라 직접고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던 도공은 결국 대상자 전원을 정규직 전환하기로 했다. 이로써 집단 해고와 장기 투쟁 등 사회적 갈등을 부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정규직 전환 문제는 일단락됐다.

정규직 전환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으로 일터에 복귀한 요금수납원은 더 이상 수납원이 아니다. 요금소를 떠난 이들의 새 일터는 도로다. 졸지에 비숙련 노동을 하게 된 수납원들은 낯설고 위험한 작업장에서 더 많이 쉽게 다친다. 투쟁기간 동안 지속된 도로공사의 ‘노동자 갈라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노노갈등’이 불거졌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생긴 상처와 후유증은 오롯이 현장 노동자의 몫이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도로공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도로공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거주지에서 먼 지방으로 보내

최양예씨(49)는 한국도로공사 광주(光州)지사 소속 현장보조원이다. 2005년 경기 매송영업소에서 요금 수납일을 시작했고, 톨게이트 투쟁 직전에는 서안산 영업소에서 사무를 맡아 했다. 2019년 8월 29일 대법원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300여 명에 대해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최씨는 그해 10월에 일터로 복귀했다. 도로공사는 최씨를 광주지사로 발령냈다. 평일에는 광주에 마련한 숙소에서 거주하고 주말은 경기 안산의 자택에서 보낸다.

최씨는 ‘도로팀’을 배정받았다. 고속도로 가드레일 건너편에 있는 비탈면 청소를 주로 한다. 지난해 11월 25일 최씨는 경사진 비탈길에서 쓰레기를 줍다가 부상을 입었다. 낙엽이 쌓인 깊은 구덩이에 발이 빠지면서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 부상 우려가 있는 작업장이지만 도로공사에서는 ‘위험하지 않다’며 별도의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

산재처리에도 애를 먹었다. 사고가 나자 도로공사 측은 최씨에게 ‘산재 말고 공상으로 처리하자’고 요청했다. 산재가 통계에 잡히면 재해율이 올라가 기관 평가에서 감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공사 측은 산재처리를 할 경우 산재 관련 모든 서류 작업을 최씨가 직접 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씨는 산재를 요청했고, 4주가량의 병원 치료를 받았다. 최씨는 “부상 위험이 있는 작업인데도 회사에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회사에서 노동자 안전 문제를 너무 등한시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타 지사 노동자들이 처한 환경도 다르지 않다. 강원 원주지사에서 일하는 박현숙씨(50)는 13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2007년 경기 구리남양주영업소에서 수납원으로 일을 시작해 하이패스와 사무업무를 맡아 경력을 쌓았다. 2019년 6월에 해고됐다가 대법원 판결 이후 10월에 복직했다. 박씨의 거주지는 경기 하남이지만 도로공사는 박씨를 원주로 발령냈다.

박씨는 이른바 ‘토끼굴’로 불리는 도로 암거와 도수로 청소를 한다. 쌓인 토사는 삽으로 떠내고 낙엽도 쓸어낸다. 현장보조원 27명이 3개 조로 나뉘어 경기 여주부터 강원 둔내까지 76㎞ 구간을 청소한다. 졸음쉼터와 버스정류장 청소도 박씨를 비롯한 현장보조원의 몫이다. 작업장을 옮길 때는 노동자가 직접 운전해 이동한다. 운전에 서툰 노동자가 많기 때문에 늘 사고가 날까봐 가슴을 졸인다. 박씨는 톨게이트 수납업무보다 더 위험하고 고된 일을 하고 있다.

반면 급여는 이전보다 줄었다. 박씨는 도로공사로부터 10호봉을 인정받았지만 현재 한 달 급여는 200만원이 채 안 된다. 톨게이트 계약직(3교대) 당시에는 평균 실수령액이 약 220만원이었다. 박씨와 같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에게 책정된 급여 수준은 최하위 직군인 ‘조무직 노동자’보다 15%가량 낮다. 박씨는 “말로만 듣던 일을 직접 해보니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든다”며 “너무 고되고 임금이 낮으니까 어떤 분들은 차라리 자회사로 가고 싶다고 한다. 그분들 심정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현장보조원으로 발령받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고속도로 관리와 청소 업무를 한다. 민주일반연맹 제공

현장보조원으로 발령받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고속도로 관리와 청소 업무를 한다. 민주일반연맹 제공

노노갈등과 곱지 않은 여론도 부담

일도 고되지만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노노갈등이다. 복직 시기와 투쟁 참여 여부, 속했던 노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쉽게 섞이지 못한다. 투쟁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도로공사는 직접고용 뒤에도 노동자 간 ‘갈라치기’를 부채질한다.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 부지부장은 “도로공사에서 근무 형태나 처우를 두고 이간질을 한다. ‘민주노총이 서명했다. 아니다. 사실은 한국노총이 했다’, 이런 식으로 확인되지 않은 말을 퍼뜨려 노동자 간 갈등을 조장한다”며 “가뜩이나 서로 마음을 열지 못하는 노동자들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고 말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를 보는 곱지 않은 여론도 이들에게는 부담이다. ‘요금수납원은 정규직이 맞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았지만 이들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톨게이트 노동자 관련 기사에는 여전히 ‘정규직 자리를 거저먹었다’는 댓글부터 ‘표 끊는 아줌마’라는 비하 표현도 반복해서 달린다.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고발했지만 돌아온 것은 여성 혐오와 직업에 대한 멸시였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톨게이트 수납원을 겨냥해서 했던 ‘없어질 직업’ 발언은 톨게이트 노동자에 대한 폄하 여론을 부추겼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톨게이트 투쟁 과정에서 특정 직업과 노동에 대한 비하 표현이 대중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왔다”며 “한국사회가 여성 노동과 서비스 노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톨게이트 노동자의 직접고용 이후에도 갈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처우, 노노갈등 등 해결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정부와 도로공사는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도로공사는 투쟁 과정에서 이뤄진 고소·고발 손배 청구도 여전히 철회하지 않고 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사실상 폐기된 상황”이라며 “법원의 판결로 힘겹게 전환한 정규직 일자리마저 나쁜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