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 참여와혁신] “노동자의 권리는 노사 자율의 영역이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노사 자율의 영역이 아니다”

손광모 기자

원문보기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80

 

‘노동에 기울어진 법’ 이면에 ‘노동의 사법화’?
노동분쟁 ‘유발’하는 제도적 문제 … ‘노사자율’ 아닌 ‘법 준수’ 필요해

리포트_법이 보장하는 노동권을 넘어

8억 2,386만 1,311원. 어김없이 숫자는 노동자를 내리눌렀다. 일진다이아몬드 사측은 2019년 6월 26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간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에 약 8억 2,000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200일을 훌쩍 넘긴 노조의 전면파업에 대한 회사의 대답이었다.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은 노동분쟁에 대응하는 회사의 자연스러운 업무가 됐다. 그렇지만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월급을 포기하면서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에게 10년을 모아도 부족한 거액의 배상금 청구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가혹하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노동에 불리하다. 또한 노동위원회와 검찰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관대하다. 2013년 10월 22일 심상정 당시 정의당 의원은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을 공개하며 삼성그룹 차원의 지시로 노동조합을 파괴한 사실을 폭로했다. 하지만 삼성의 노조파괴가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는 약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노동위원회는 사용자의 불법을 시정하는 데 머뭇거렸고, 검찰은 기소를 우야무야 늦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법의 이면에 통상 ‘노동의 사법(司法)화’로 지적되는 현상이 있다. 굵직굵직한 노사관계의 쟁점들이 노사자율이 아닌 법원의 판단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노동에 기울어진 법에 노동자의 권리를 호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와 충북 노동시민사회단체 및 정당이 개최한 1월 22일 오전 10시 30분 손배가압류! 고소고발 남발! 교섭해태! 일진다이아몬드 자본 규탄 충북 노동시민사회단체 및 정당 공동 기자회견’ 현장. ⓒ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
 

‘합법적인 파업’은 하늘의 별따기

일진다이아몬드는 노조의 파업으로 총 8억 2,000만여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법 제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판례상 ‘정당하지 않은 파업’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가능하다. 일진다이아몬드는 노조의 파업이 ‘불법적’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 같은 법리는 1990년 형성되기 시작해 1994년 완성됐다. 법원과 정부의 합작품이었다. 1989년 8월 1일 대구 소재의 자동차부품회사 (주)건화는 상여금 문제로 농성을 벌이다 해고된 노조 조합원 2명을 상대로 1,795만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파업으로 1주일 간 조업에 차질을 빚어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1990년 7월 2일 대구지법은 먼저 회사의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해고자 2명이 벌인 조업중단은 파업으로 봤다. 당시 조업중단(파업)은 우발적으로 진행됐기에 노조는 절차를 지키지 못했다. 따라서 조업중단(파업)은 ‘정당하지 않은 파업’으로 판단됐다.

결국 해고자 2명은 부당해고판정을 받았음에도 손해배상청구액 중 30%인 538만 원을 부담해야 했다. 1990년 평균 월 소득이 82만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6개월치 임금을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해고자 2명은 회사가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해주는 대신 복직을 포기했다.
 

배달호 열사의 모습. 배달호 열사는 2002년 7월 23일 두산중공업 파업투쟁으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같은 해 9월 12일 회사는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했다. 이에 배달호 열사는 2003년 1월 9일 분신으로 부당함에 항거했다. ⓒ 배달호 열사 추모사업회

이후 최영철 당시 노동부 장관은 1990년 10월 22일 전국근로감독과장회의에서 “회사에게 불법 쟁의에 따른 손실을 노조에 청구하도록 지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1994년 3월 25일 대법원(선고 93다32828,32835 판결)은 “민사상 배상책임이 면제되는 손해는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국한된다고 풀이하여야 할 것이고, 정당성이 없는 쟁의행위로 말미암아 손해를 입은 사용자는 노동조합이나 근로자에 대하여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활용도가 광범위해졌다. 초기 손해배상청구소송이 파업을 조기에 중단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용됐다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 등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을 억누르기 위해 사용됐다. 현행법상 목적과 절차, 수단 등 법에 정한 제한규정을 모두 충족해야만 합법파업이 가능하다. 가령 임금 및 노동시간, 복지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이 아니라면 ‘불법파업’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또한, 파업의 불법화는 ‘업무방해죄’와도 연결된다. ‘불법적인’ 파업에 따라 조업에 차질이 생긴다면 곧 업무방해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현행 형법 314조에 따르면,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를 형법으로 처벌하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극히 ‘합법적’이다.

 

 

‘부당노동행위 처벌’도 하늘의 별따기

파업의 합법성을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반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처벌이 약할 뿐더러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검찰 및 노동위원회가 사용자, 특히 대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조합법 제90조에 따르면, 부당노동행위를 행한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노동자가 파업으로 받을 수 있는 업무방해죄의 형벌에 비해서 가볍다. 더욱이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사용자가 실형을 선고받기는 매우 어렵다. 기소율 자체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9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고용노동부가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비율은 약 20%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노동위원회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의 기소율도 2016년 59.8%에서 2017년 43.2%으로 떨어진 데 이어 2018년에는 12.2%를 기록했다. 2018년 기준으로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전체 부당노동행위 사건은 993건인데 반해,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단 29건이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대기업을 따로 두고 봤을 때 더욱 극적이다. 류하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지난 1월 9일 ‘삼성 노조파괴 판결의 의미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담당한 현대중공업의 부당노동행위 고발 사건 중 기소처리 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음을 지적했다. 2014년 1월 이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회가 울산지청에 고발한 31건의 부당노동행위 중 26건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5건은 아직 심사 중에 있다.

고용노동부 청주지청도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고발한 4개 사건을 1,107일에서 1,267일까지 처리를 유예하다가 2018년에서야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2013년 정체가 드러난 삼성노조파괴 사건을 두고 검찰과 노동위원회가 보여준 조치는 두말할 것도 없다.

노동의 사법화? “권리는 협상이나 자율의 대상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노동위원회는 1963년 4월 개정된 노동조합법에 따라 ‘부당노동행위 구제명령권’을 가진다. 개정 당시 고 박덕배 서울대 법대 교수는 “공무원이나 또는 행정이라면 권력관계가 아니고 봉사의 위치에 있다는 센스가 거의 결여돼 있는 한국에서 미국식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행정의 개념과 어감을 미국식으로 생각함은 심히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비판했다.(‘월간 법제’, 1963년 9월호. 재인용; 박은정(2016), ‘미국-일본-한국의 노동위원회 : 계보적 고찰’)

당시 한국 행정의 수준이 ‘공정하게’ 부당노동행위의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노동위원회의 공정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배경에서 ‘노동의 사법화’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

흔히 사용자는 ‘노사관계의 문제는 자율이 원칙’이라고 말한다. 노사가 자율적인 대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노동자들은 법원에 가져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기덕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변호사)는 “노동자의 권리는 노사자율의 영역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것”이라며, “법원에서 노동자의 새로운 권리를 호소할 수는 없다. 이미 노동자가 확보한 권리를 사용자가 침해할 경우에 법원이 선언해주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요컨대 ‘노동의 사법화’는 노사의 문제해결능력 부족을 보여주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히 지켜져야 할 노동자의 권리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적절한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노동자들은 자비를 들여서까지 권리를 확인받기 위해 법원에 찾아간다.

더불어 노동에 기울어져 있는 법 자체도 노동자들의 격한 행동을 부추긴다. 김기덕 대표는 쌍용차 사태의 예를 들며, “사실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저지하는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짓지 않았다면 노동자들이 정상적으로 파업을 했을 것이다”라며, “법원에서 불법파업이라고 규정짓고, 정부에서는 공권력을 투입하려고 하니, 노동자들은 아예 공장을 점거하는 투쟁을 하려고 한다.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12월 19일 “국가폭력 피해 10년, 쌍용차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국가손배대응모임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노동조합은 새로운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법원을 찾는 배경에는 노동조합의 과오도 있다. 현재 공공부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임금피크제 혹은 제조 사업장에서 불거지는 통상임금 문제 등은 결국 지난 시기 노동조합이 ‘합의’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기덕 대표는 ‘임금피크제의 운명’이라는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말이 ‘동의’고 ‘합의’지 노조가 사용자에게 해준 동의 내지 합의는 자신의 권리를 삭감당한 조합원과 노동자에게 ‘협잡’의 다른 말이다. 노동자의 권리로만 본다면, 이 나라에서 노동의 역사는 노조가 동의해 주고 노사합의를 해서 빼앗기게 된 임금 등 권리를 노동자들이 찾아왔던 것이라고 써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니 그러한 권리 주장이 기록된 판결문을 읽는 일은, 노조가 했던 일과 해야 했던 일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권리는 타협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게도 뼈가 있는 말이다. 김기덕 대표는 “노동조합의 역할은 이미 확보된 권리를 재확인 받는 게 아니라 새로운 권리를 쟁취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법이나 소송으로는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다.

출처 : 참여와혁신(http://www.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