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 참여와혁신] [이동희의 노크노크] 지난 3년의 조각들

[이동희의 노크노크] 지난 3년의 조각들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원문보기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42

 

[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내가 <참여와혁신>에 입사한 첫해인 2017년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이 ‘다시’ 시작된 해였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굴뚝농성, 단식농성, 인도 원정투쟁 등 강도 높은 투쟁을 불사한 결과 2015년 12월 노노사 합의에서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노동자 전원을 복직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일부가 복직되었을 뿐, 회사는 해고노동자 전원을 복직시킬 만큼 경영상황이 호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쌍용차지부는 2017년 상반기 이후 합의 불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복직 투쟁에 들어갔다.

내가 출입처를 배정받고 쌍용차 복직 투쟁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게 마침 그 무렵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 기사를 쓰고 있다.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8년 9월 노노사정 합의 파기와 회사의 ‘무기한 휴직’에 맞서 또다시 투쟁에 들어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키워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복직 투쟁’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을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기록을 들춰봤다. 전부를 담을 수 없어 몇 개의 조각만을 담았다. 쌍용차 투쟁은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연대하고 함께한 투쟁이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조각 하나. 영화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2017년 10월)

2017년 9월 7일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정운 씨(김정운 씨는 2017년 상반기 이전 복직했다)와 그의 아들 현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안녕 히어로》가 개봉했다. 영화는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해고노동자들이 벌이는 투쟁을 배경으로,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아빠와 아빠를 통해 세상을 만난 아들의 성장 스토리를 담았다.

이 영화를 만든 한영희 감독에 따르면 ‘아빠가 투쟁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 말을 하지 않는, 아빠의 일을 이해하고 비록 힘은 없지만 그래서 안타깝지만 아빠가 영웅이라고 이야기하는 현우’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왜 감독은 쌍용차 투쟁을 다루면서 해고노동자의 가족에게 집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싸움이 해고자 한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가족의 싸움이기도 하고, 그 가족과 관계된 수많은 공동체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해고자 가족의 이야기로 노동의 현실을 전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감독 개인적으로 쌍용차 투쟁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묻는 질문에 한영희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함께 살자고 했던 투쟁이 아니었을까. ‘어렵더라도 우리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 보아요’가 쌍용차 투쟁 의미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더 많이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 과정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로 보이는 투쟁이 사실은 내 노동조건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쌍용차 투쟁자들이 내세웠던 ‘함께 살자’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조각 둘.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2018년 4월)

쌍용차 투쟁 과정에서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서른 명이 세상을 떠났다. 쌍용차 정리해고 및 국가폭력 사태가 ‘사회적 재난’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 재난의 피해자인 해고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동자 건강 연구 및 실태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2009년에는 정리해고 반대 공장점거 파업을 벌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으며, 2015년에는 해고자와 복직자 건강 비교 연구가 진행됐다.

김승섭 교수를 처음 만난 건 2018년 4월이었다. 김승섭 교수 공동연구팀과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을 받아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 노동자 건강 연구에 착수한다는 기자간담회에서였다.

이날 김승섭 교수는 ‘한국 사회는 이런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한국 사회는 해고된 노동자를 이렇게 대해도 되는가?’, ‘우리는 이런 국가를 용납할 수 있는가?’ 세 가지 질문을 던졌고, 아래와 같이 답했다.

“쌍용차 사태 10년이 다 돼가는데 왜 지금도 쌍용차 이야기를 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지난 정리해고의 과정, 해고노동자에 대한 대우, 이러한 국가폭력이라고 하는 질문들은 계속 유령처럼 다시 한국 사회에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가 한 걸음이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합니다.”

조각 셋. 권지영 심리치유센터 와락 대표(지난 2018년 8월)

심리치유센터 와락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라는 낙인에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치유 공간으로, 2011년 10월 30일 만들어졌다.

권지영 와락 대표와의 인터뷰는 2018년 8월 대한문 앞 고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서른 번째 희생자 김주중 조합원은 2009년 공장점거 파업에 참여한 해고노동자이자 국가폭력의 피해자였다.

이날 인터뷰에서 권지영 대표는 고 김주중 조합원을 추억했다. “2009년 공장 점거파업 당시 조합원 중에서도 선봉대 역할을 하셨던 분이었죠. 아내분도 가족대책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하셨으니까 모두가 그 부부를 알았죠. 우리와 심리적 거리가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한동안 안 보이다가 언론 인터뷰도 하고, 경찰 인권침해 조사에도 응하는 모습을 보고 ‘요즘에는 마음이 좀 편안해지셔서 이야기도 하러 나오시는구나.’ 저는 사정을 모르고 오히려 반대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다들 충격적이었고 많이 속상해했죠.”

조각 넷.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2018년 10월)

지난 2018년 9월 21일에 있었던 쌍용차 노노사정 합의 이후 김득중 지부장을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복직 합의를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지난 투쟁의 시간이 가진 무거움을 알기에 축하라는 표현이 조심스럽다고도 덧붙였다.

“축하한다는 말도 자주 들었더니 나쁘지 않더라고요.(웃음) 사실 합의하고 나서도 덤덤했어요. 워낙 긴 싸움이었으니까 막상 합의가 이루어지니 허망한 마음도 있었고요. 한고비를 넘겼으니 다음 고비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는데, 주변에서 고생했다,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더니 이제는 축하받아도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이날 김득중 지부장은 쌍용자동차와 같은 정리해고의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은 언제든지 위기가 올 수 있어요. 위기를 해결한다고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을 이제는 탈피해야 해요. 특히나 해고노동자를 받아들일 사회 안전망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을 나락으로 떠미는 것과 같아요. 기업은 언제든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 결국 노사가 이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대화하면 방법은 찾을 수 있어요. 여기에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도 중요하죠. 지난 쌍용자동차 사태에서는 정부가 노동자들을 오히려 더 벼랑 끝에 내몰았지만, 이번 노노사정 합의 이후에는 우리 사회가 정리해고를 우선시하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각 다섯.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2020년 1월)

“이번 사회적 합의는 노노사정 네 주체가 함께 합의를 도출해낸 이례적인 합의였고, 서른 명의 희생이 있고 난 뒤에야 어렵게 만들어낸 결과였잖아요. 누구도 이게 깨질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합의서에 사회적 합의를 파기하려면 노노사정이 같이 논의해야 합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게 해놨어요. 지금처럼 회사와 기업노조가 둘만 논의해서 일주일 전에 통보하는 방식으로는 깰 수 있는 합의가 아니에요.”

윤지선 활동가의 말처럼 그 누구도 깨질 거라고 생각 못 한 합의가 깨졌다. 지난해 12월 24일 회사와 기업노조는 복직을 앞둔 마지막 해고노동자 46명에게 무기한 휴직을 통보했다. 주변 사람들의 복직 축하를 받으며 2020년 새해가 밝기를 기다린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제는 절기상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이었다. 얄궂게도 입춘이 지나자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찾아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에 연대하는 시민사회종교단체는 어제부터 청와대 사랑채 앞 1인 시위에 돌입했다. 내내 따뜻하다가 왜 하필 어제부터 추워지고 난리람. 올겨울 처음 본 함박눈도 전혀 반갑지 않다.

출처 : 참여와혁신(http://www.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