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 없는 휴직을 멈춰라"… 쌍용차 사회적 합의 파기 규탄
21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 열고 대국민 사과, 46명 즉각 복직, 손배 철회 요구
송승현 기자 kctu@hanmail.net
원문보기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251176
시민사회, 인권, 종교, 법률, 여성, 노동 등 각계각층이 21일 오후 서울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자동차 사회적 합의 이행을 위해 범국민대책위원회가 활동을 재개함을 알리면서 46명의 복직자들을 반드시 공장으로 돌려보낼 것을 결의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11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쌍용자동차 복직예정자들이 받아든 건 '무기한 휴직'이었다. 임금의 70%를 약속하는 조건,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24일 벌어진 일방적인 통보는 또 다시 쌍용차 노동자의 눈을 붉게 만들었다.
사측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아들이지 않은 마지막 복직자 46명은 예정대로 지난 7일 평택 쌍용차 공장으로 출근했다. 9일에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휴직 구제신청서'를 제출했고 이튿날 '부당노동행위 진정'을 냈다. 그들이 공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되찾는 것을 넘어 국민이 바라보고 정부가 약속한 4자 사회적 합의를 지켜내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21일 오전 11시30분,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쌍용차 사회적 합의 파기 규탄 각계각층 대표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 인권, 종교, 법률, 여성, 노동계를 대표해 모인 이들은 "쌍용자동차는 사회적 합의 파기를 사과하고, 조건 없이 즉각 복직을 이행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시민사회를 대표해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했을 때 우리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했다. 양승태 사법농단을 보며 우리는 함께 분노했다. 쌍용차 정리해고의 배경에 있던 청와대와 법원 행정처의 물밑 협상에 우리는 절망했다"며 "그 결과 노동자들이 투옥됐고 자살했고 돌연사했다. 그렇게 30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탄식했다. 이어 "그 긴 싸움 끝에 이룬 노노사정 합의를 우리는 '사회적 합의'라 불렀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이 합의를 기뻐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정 공동대표는 "우리는 쌍용차가 제안한 무기한 휴직 연장에 동의할 수 없다. 다시 시민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며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다시 쌍용차를 제 자리로 돌려놓자. 쌍용차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해결하자"고 호소했다.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은 "2018년 9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을 때 그제야 긴 고통의 세월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직접 쌍용차 마힌드라 사장을 만나 만든 합의라, 당연히 약속이 지켜질 거라 믿었다"며 "이 사회적 합의를 깨는 것엔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결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손해배상 가압류도 즉각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노동자 30명의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이대로 방치하면 언제 또 같은 죽음이 나올 지 알 수 없다"며 "정부는 경사노위에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로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한수 스님은 "쌍용차 사회적 합의는 서로가 약속을 지키겠다는 약조였다"며 "일방적인 파기는 커다란 거짓말이다. 노동자 개인의 의사 없이 쌍용차 기업노조가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집단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불교에서 거짓말은 살생과 동일하게 금지하는 중요한 계율이다.
한수 스님은 "쌍용차의 거짓말을 방조한 정부도 거짓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며 "공동의 거짓말을 조속히 깨닫고 사회적 합의를 원상회복하자"고 호소했다.
법률계를 대표해 나선 송상교 민변 사무총장은 "복직예정자에 대해 무기한 휴직을 결정하려면 그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노동자와 합의해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은 판례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며 "이번 사회적 합의 파기는 권리도 없는 자가 어떤 절차도 거치지 않고 사회적 합의를 파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며 "쌍용차는 잘못한 것을 명백히 인정하고 남은 복직자들을 즉각 부서에 배치하면 된다. 이를 설 전에 하는 것이 법을 지키는 도리"라고 말했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난 건 기업과 국가가 동조했기 때문이었다"며 "노동자들을 거리에 내몬 것은 기업과 국가"라고 지적했다. 또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실시했던 회사는 이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다"며 "그런데도 몇 명의 특정 노동자의 복직을 거부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상임대표는 "쌍용차 노동자가 싸울 때 그 앞에서 어린 아이를 안고 공장 안에서 싸우는 남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며 "10년 넘게 많은 사람들이 쌍용차 문제를 지켜보고 있다. 그 안에서 함께 아파했던 가족이 있다. 그들과 함께 싸우고 함께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노동계를 대표해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이상진 부위원장은 "2019년 사회적 합의를 이뤘을 때도 우리는 온전히 기뻐하지 못했다. 10년의 싸움 속에서 많은 상처와 고통이 있었기에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지난달 24일 쌍용차는 아무런 사전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노노사정 합의를 파기했다"라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합의 당시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스스로 '촛불정부가 이런 것'이라며 자화자찬을 했다. 그러다 이번 합의 파기에 대해서는 '임금 70%를 받고 참아라'는 망발을 던졌다"고 비판했다.
이상진 부위원장은 "남은 46명의 복직자들이 온전히 복직할 수 있도록 뜻과 마음을 모았다"라며 쌍용차 작업복을 준비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준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에게 직접 입혀줬다. 기자회견 내내 굳었던 표정의 장준호 씨는 작업복을 입는 내내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장준호 씨는 "다시 출근한 지 11일 됐다. 공장 안 선후배들도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다"며 "이제 다시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음에도 사측은 우리에게 사원증과 작업복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유급휴직이 아니다. 동지들과 함께 일하며 급여를 받는 것이다. 그걸 위해 10년의 세월을 견뎠다"라고 말했다. 장 씨는 "떳떳하게 일해서 떳떳하게 100%의 급여를 받겠다"고 강조했다.
오늘 기자회견 전 이뤄진 각계각층 대표자 회의는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사회적 합의 파기 책임을 묻기 위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고 결의했다. 대책위는 ▲사회적 합의 파기 대국민 사과 ▲쌍용차 마지막 해고자 46명 복직 ▲손해배상 철회 등을 목표로 내세웠다.
대책위는 설이 지난 2월 3일부터 매일 청와대 앞에서 각 대표 1인시위를 시작한다. 또 이날부터 매주 1회 오후 7시 쌍용차 평택공장 앞 촛불문화제를 연다. 2월 중에는 사회적 합의 파기 규탄대회를 열 계획이다.
한편 민주노총 또한 오는 23일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쌍용차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사회적 합의 파기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내용을 포함한 '민주노총 귀향선전전'을 할 예정이다.
시민사회, 인권, 종교, 법률, 여성, 노동 등 각계각층 등이 쌍용자동차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46명 복직자 중의 한명인 장준호 조합원이 입장을 밝힌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