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31 프레시안] 해가 바뀌어도...길 위에서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

해가 바뀌어도...길 위에서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들

[인터뷰] 연말에도 싸우고 있는 노동자와 유족 5명

최용락 기자 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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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고공과 농성장에서 싸우며, 혹은 싸움을 준비하며 한 해를 보내는 노동자와 유족이 있다.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다 해고된 김용희 씨는 6월 10일 삼성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25m 높이 강남역 CCTV 철탑에 올랐다.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파괴에 대한 1심 유죄 판결이 나오고 과거의 노조 파괴 행위를 사과한 삼성은, 김 씨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6월 30일 해고된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은 "1500명 직접고용"을 외치며,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역구 사무실 30곳과 광화문 세종로공원 천막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500명 해고 사태를 야기한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전 사장은 사장직을 내려놓은 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민주당은 31일 수납원들에게 사무실 퇴거를 요청했다.

노조 파괴 노무법인으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 계약한 영남대 의료원에서 2006년 해고된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은 7월 2일, 복직과 노조 탄압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75m 높이 영남대 의료원 건물 옥상에 올랐다. 연말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노사 의견 접근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교사의 부정 경마 지시와 마사회의 불공정한 마방 배정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11월 29일 세상을 떠난 고 문중원 기수 유족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서울 정부청사 앞 시민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유족 및 사고가 일어난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와 협의 없이 '경마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쌍용차 복직대기자 47명은 10년만의 복직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12월 24일, 사측과 기업노조로부터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를 받았다. 2019년 말까지 부서 배치를 완료하기로 한 2018년 9월 노노사정 합의를 뒤집은 결정이었다. 복직대기자들은 오는 1월 6일 노노사정 합의에 따라 공장으로 출근하며 이에 맞설 계획이다. 

<프레시안>이 이들 사업장의 노동자와 유족에게 한 해를 보낸 소회와 새해 바람을 물었다.

삼성 김용희 "삼성의 노사관계가 시대정신에 맞게 변화하길 바란다"

김용희 씨는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철탑 위에 올라온 기억 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로는 7월 10일 자신의 정년이 도래한 날을 꼽았다. 김 씨는 "올라올 때 철탑에서 정년까지 넘긴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그 날 '동지들과 같이 건강하게 싸워야 하나. 이 고통을 끝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는데, 지금은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새해 소망에 대해 "꿈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삼성 문제가 빨리 해결되고 삼성의 노사관계가 시대정신에 맞게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강남역 철탑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김용희 씨. ⓒ프레시안(최형락)

톨게이트 도명화 "조합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료, 투쟁하는 동지로 남았으면 좋겠다"

도명화 톨게이트지부 지부장(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은 "2019년 한 해는 내 생애 또다시 경험할 수 없는 한해였다"고 말했다. 도 지부장은 "이렇게 6개월 동안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게 신기했다"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있는 한해였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한해였다"고 밝혔다.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 올라간 날을 꼽았다. 도 지부장은 "톨게이트 조합원이 1500명이라고는 해도 한번도 서로 못 보신 분도 많았는데, 캐노피에 올라간 날 오후에 조합원들이 서울 캐노피 아래에 모였었다"며 "이 정도면 이 싸움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고 말했다. 

도 지부장은 "대법원 직접고용 판결이 났을 때 가장 즐거우면서도, 도로공사가 대법원 판결자들만 오라고 갈라치기하는 꼴이 돼서 힘들었다"며 "대법원 판결 직후 본사를 점거한 조합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캐노피 위에서 영상으로 보면서 괴로웠다"고 밝혔다.

도 지부장은 "새해 소망은 당연하지만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우리는 다 돌아갈 건데 이후에 업무와 관련해서도 투쟁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복귀 후에도 조합원들이 흩어지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동료로, 투쟁하는 동지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 지난 11월 5일 오체투지 중 휴식시간을 갖고 있는 톨게이트 수납원들. 가운데 손을 뻗고 있는 사람이 도명화 톨게이트지부 지부장. ⓒ프레시안(최형락)

영남대의료원 박문진 "제발 국가가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은 "2019년은 정말로 특별한 한해였다"며 "불가능한 꿈을 꾸게 했고, 그 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는 고공농성을 시작한 날을 꼽았다. 박 지도위원은 "13년 만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위해 올라왔는데 '(고공농성이) 성사가 될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고, 고공에 올라왔을 때는 ‘길이 열렸다’, ‘투쟁할 수 있다’고 느꼈다"며 "이후 50일 투쟁, 100일 투쟁 등을 할 때 많은 사람이 모이고, 대구 지역에서 집회와 선전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 감동했다"고 전했다. 

박 지도위원은 "최근에 김진숙 선배가 그 몸을 이끌고 온 일에 대해서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복잡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을 신을 대하는 자세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박 지도위원은 새해 소망을 묻자 "제발 국가가 국민을 고통스럽게, 속 썩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며 "그래서 우리 노동자들이 가족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고, 비정규직이 철폐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박 지도위원은 "내년에는 정말 우리 노동자 민중이 잘 싸우면 좋겠다"며 "톨게이트가 창원 비정규직이, 그밖에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이 승리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 지난 12월 29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만나고 있는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공동취재단

마사회 오은주 “서울 길 한복판에 누워있는 남편을 따뜻한 곳에 묻어주고 싶다”

문중원 기수의 부인인 오은주 씨는 2019년에 대해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제일 기억에 남을 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씨는 남편이 떠난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 씨는 “사고가 일어나고 전화를 받은 날이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 “안치실에 누워있는 남편이 정말로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차갑게 굳어있었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계속 떠오르고, 그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밀려온다”고 밝혔다. 

오 씨는 “남편을 그렇게 보냈지만 남편이 간 이유를 알아야 한다”며 “유서에 나와 있는 진상을 규명해야 되고, 꼭 일이 잘 해결되어 서울 길 한복판에 누워있는 남편을 반드시 따뜻한 곳에 묻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 씨는 “장례를 치르고 나면, 남편이 다녔던 마사회의 다른 기수와 마필관리사도 차별받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곳에서 일하면서 다시는 죽을 생각하지 않고, 일하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 마사회 본관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며 앉아 있는 고 문중원 기수 유족. 오른쪽이 부인 오은주 씨. 공공운수노조 제공.

 

 

쌍용차 김득중 "차분히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1년 전 오늘이 71명의 동료가 공장으로 돌아간 날이었다"며 "다른 어느 해보다 기분 좋게 출발한 한 해였고, 현장으로 돌아가기까지 그동안의 고마운 마음을 최대한 나누고 연대하려 한 해였다"고 전했다. 김 지부장은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손해배상 가압류 문제가 걸려 있어 마음 한편이 착잡한 해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 지부장이 꼽은 지난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역시 12월 24일 사측과 기업노조의 무기한 휴직 연장 통보다. 그러나 즐거운 한 때도 있었다. 김 지부장은 "10년 만에 우리 조합원들 10여 가족 50여 명과 여름휴가를 다녀왔다"며 "그때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사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는데, 해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던 때라 '이게 우리가 찾고자 하는 일상이었구나'라고 생각했었다"고 전했다. 

 

김 지부장은 새해 각오에 대해 "이 문제(무기한 휴직 연장) 또한 차분하게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며 "여전히 10년 동안 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인의 문제인 것처럼 마음을 모아주신 분들을 잊지 않을 것이고, 어려운 조건이 있지만 끊임없이 연대하고 나누면서 2020년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쌍용차 문제뿐 아니라 주변이 너무 어렵다"며 "창원 비정규직, 영남대의료원, 강남 김용희 씨를 포함해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아직도 노숙과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지난 30일 대한문 앞에서 사회적 합의 파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쌍용차지부와 시민사회단체. ⓒ프레시안(최용락)

 

그리고 길 위에서, 공장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월 25일 사측으로부터 물량 감소를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예정일은 용역업체 계약이 만료되는 31일, 바로 오늘이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공장에서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광화문에는 여전히 고김용균시민분향소가 차려져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시민과 노동자가 그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정부가 김용균특조위 권고안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각자의 이유로 싸우는 많은 사람을 남겨둔 채 2019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