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8 중기이코노미] 정부, 쌍용차노조가 짊어진 무거운 짐 내려줘야

정부, 쌍용차노조가 짊어진 무거운 짐 내려줘야

그 짐이란 게, 정부와 경찰의 불법행위에 따른 부산물이다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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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진압과정 당시 위법·부당한 강제진압을 자행하여 쟁의행위에 참여한 근로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 등을 당한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생존권을 위협하는 가압류가 수반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행위는 그 정당성이 상당히 결여되었으며, 경찰의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 책임에 대한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

 

지난 6월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10년만에 복직했지만 경찰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철회하지 않아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며, 인권침해조사위원회 권고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인권위원회가 쌍용자동차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한 국가의 손해배상청구는 정당성이 없다며, 17일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 한 구절이다. 인권위는 의견서를 통해 경찰이 위법·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면서, 쌍용차노조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없음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쌍용차노조 파업에 대한 강제진압이 위법했다는 ‘공적’ 판단, 인권위만이 내린 결정이 아니다. 지난 8월 경찰청 인권침해진상조사위원회도 쌍용차노조 파업 진압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청에는 쌍용차노조 등에 대한 사과와 함께 손배배상청구소송 철회도 권고했다. 이에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의 대응도 인권침해적 요소들이 있었다”는 반쪽짜리 사과를 하면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 권고는 거부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당시 “(쌍용차노조 파업) 상황 때 여러 가지 불법적인 요소들이” 있었다며, 대법원의 최종판단을 기다린다고 했다. 경찰청장 바람과 달리, 인권위는 의견서에서 경찰의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책임은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쌍용차노조의 불법행위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경찰의 위법·부당한 법집행에 대한 단죄는 별개란 얘기다. 

 

인권위는 경찰의 위법·부당한 법집행을 방치한 정부책임 또한 단호하게 지적했다. 인권위는 “정리해고 실시에 대한 반대가 적법한 쟁의대상에 해당되지 않고, 사법기관을 통한 사후구제 역시 어려운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다수의 근로자들이 특별한 귀책사유 없이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정이라면, 기본권 보호의무가 있는 국가가 당시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할 헌법상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무를 해태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와 법원의 주류 입장에 따르면 정리해고 반대를 이유로 한 파업은 불법이다. 정리해고의 적법성 여부를 법원에서 다툴 수 있지만, 설사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도 원상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용자의 불법적인 정리해고 결정만으로도 아무런 귀책사유 없는 노동자의 생존권은 박탈될 수 있다. 이같은 현실과 법집행 관행을 잘 알기에, 인권위는 ‘갈등의 조정자 역할’이 국가의 헌법상 의무라고 지적했다. 쌍용차 파업 당시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헌법상 의무를 해태하고, 정부는 경찰의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를 방조했다. 경찰 못지않게 쌍용차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으로, 인권위가 국가를 지목한 이유다.   

 

아울러 인권위는 쟁위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노조활동에 대한 단순한 진압적 대응을 넘어 사전 통제·억제함으로써 노동3권 보장이 후퇴할 수 있다는 의견도 냈다. 이어 ▲쌍용차노조 등의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 내지 정당행위 성립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 ▲과실상계 법리의 폭넓은 적용 등 노동3권 행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심리·판단하라고 대법원 재판부에 권고했다. 

 

2009년 쌍용차노조 파업 이후 10여년 동안 해고노동자 30명이 신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의 불법행위를 감추고자, 쌍용차노조의 불법행위를 과장·왜곡하는 국가폭력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 10여년간 계속된 쌍용차노조와 정리해고자들의 처절한 복직투쟁은 불법파업이란 굴레 탓에 대다수 언론의 외면을 받았다. 그래도 멈춤이 없었던 투쟁의 결과 사건의 진실이 일부 밝혀졌지만, 한때 2600여명을 상회했던 정리해고자들에게 새겨진 상흔은 여전히 남았다.  

 

지난 7월1일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마지막까지 남았던 정리해고자 48명이 복직함으로써 쌍용차노조의 복직투쟁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2심 재판부가 인정한 손해배상금만 11억6800만원. 1심 판결 이후 지연이자까지 더해져 대법원이 이를 인용하면, 쌍용차노조와 노동자들이 국가에 갚아야 할 돈이 20억원 이상이다. 여기에 회사가 쌍용차노조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액까지 합치면 채무금액은 100억원을 상회한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곧 살인이다. 10여년 동안 해고자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였고, 그래서 살 길을 겨우 열었는데. 노동자 생존권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가진 국가가 또다시 발목을 잡는다. 이제 쌍용차노조와 노동자들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줘야 할 때다. 더욱이 그 짐은 정부와 경찰의 불법행위에 따른 부산물이란 게 확인됐다. 그렇다면 정부 스스로 불법행위를 자성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들로부터 그 짐을 넘겨받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갈등의 조정자’로서 나서,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역시 취하될 수 있도록 헌법상  의무를 다해 줄 것을 당부한다. 그게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하라고 명령한 헌법상 의무를 온전하게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