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7 한겨레] “가임 여성은 잘라야 해” 이후…사과 대신 소송 29건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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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콘서트 ‘여기는 원종복지관입니다’
‘세상과 맞선’ 사회복지사 조재화씨 증언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여기는 원종복지관입니다: 2015년 4월 세상을 마주한 두 여자의 이야기’ 토크콘서트에서 조재화씨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여기는 원종복지관입니다: 2015년 4월 세상을 마주한 두 여자의 이야기’ 토크콘서트에서 조재화씨가 발언하고 있다.

조재화(39)씨의 삶이 순식간에 흔들린 건 2015년 4월이었다. 사회복지사인 조씨는 직장인 부천 원종종합복지관에 둘째 임신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복지관 부장 김아무개씨는 조씨가 없는 곳에서 “이래서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라고 말했다. 조씨는 복지관 쪽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당시 복지관장 등은 조씨와 조씨를 돕는 이에게 29건의 민·형사 소송을 내는 것으로 응답했다.

일은 조씨가 복지관 쪽에 처음 저항을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이래서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라고 말한 그 부장은 “조재화 면접 볼 때 둘째 안 낳는다더니, 가정 일로 피해 안 준다더니”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조씨는 문제의 발언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복지관에 사과를 요구했다. 직장에서 한 생애 첫 저항이었다. “복지관 후원자를 만나서 노래방에 가야 하는 일들도 넘어 갔었어요. 성희롱을 당해도 ‘선생님이 예뻐서 그래’라는 말을 듣고 ‘나 하나 참으면 되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어요.” 그것은 “임신이 이렇게 폭언을 들을 정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관 쪽은 더욱 거세게 나왔다. 복지관 직원들은 전체직원 회의에서 “부장의 위신이 무너졌다” “임신부도 가해자다” “10년 조직 문화를 무너뜨렸으니 책임져라”라는 말로 조씨를 비난했다. 당시 직원들은 복지관 쪽 입장에 기댄 진술서를 써냈다. 조씨는 울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계약직 사회복지사 이은주(57)씨가 유일하게 조씨를 도왔지만, 곧 ‘임신부를 선동한 조직 분란자’로 낙인 찍혔다. 그리고 같은해 7월1일,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지역 활동가들과 연대해 8월10일 ‘원종복지관의 성차별·인권침해 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1인 시위와 기자회견, 서명운동 등을 하며 항의했다. 대답은 소송을 되돌아왔다. 당시 복지관장 등은 사건 규탄 대회 포스터를 페이스북에 게재하고 댓글을 달거나 사건 관련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조씨와 이씨, 지역 활동가들을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이렇게 쌓인 소송이 모두 29건이고, 청구된 손해배상금만 5천만원에 달한다.

 

문제가 꼬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각이다. 인권위는 2016년 5월25일 조씨가 낸 진정을 기각했다. “김 부장의 발언이 적절치 않지만 복지관에서 김 부장에게 시말서를 제출하게 했다”며 별도의 구제 조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결정을 기준으로 전후 시기를 나눠 기각 결정 이후에 진행된 1인 시위와 기자회견, 페이스북 글 게재 행위 등에 대해 모두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 기각 결정을 무시했다는 이유였다. “인권위 기각 결정이 상상도 못한 결과였어서 많이 휘청거렸어요. 사과를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그 순간 사라졌습니다.” 이씨의 말이다.

 

인권위 기각 결정은 조씨의 산재 판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복지관은 출산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조씨에게 이전과 달리 김 부장 근처 자리를 배정했다. 이런 식의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조씨가 직장에서 쓰러져 ‘우울을 동반한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조씨는 이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복지관 쪽은 산재불승인 의견서에 “산후 우울증 및 기타 개인적인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고 썼다. 근로복지공단도 2018년 2월 산재 불승인 통보를 해왔다. 역시 인권위 기각 결정이 근거였다. 이후 조씨는 ‘성차별, 직장 내 괴롭힘, 인권침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손잡고, 직장갑질119,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등이 마련한 ‘여기는 원종복지관입니다: 2015년 4월 세상을 마주한 두 여자의 이야기’ 토크콘서트에서 나온 증언이다. 이에 대해 당시 복지관장은 “해당 발언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복지관에서 해선 안 되는 발언으로 규정짓고 가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했고, 저도 사과해서 일단락이 된 사건이다. 그런데 이씨가 이 사건으로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사건을 부풀리고 페이스북에 온갖 글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현재 원종복지관 관장은 바뀌었고 상당수 직원은 새로온 상태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고통은 그대로다. 조씨는 해고 이후 정신 장애를 치료하고 있다. 이씨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지난해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보복성 손배 소송 반대” “직장내 괴롭힘 없는 곳으로” “길을 내는 당신들을 응원한다” 등을 호소했다.

 

글·사진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