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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발레오전장 부당노동행위 방조로 징역 1년2개월
13년 전 영남대의료원 사건부터 숱한 노조파괴 주범으로 지목
김성민 민주노총 대전·충북지부 유성기업 영동지회 사무장이 29일 오전 9시40분께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 등의 상고심 재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손에손을잡고) 제공
김성민씨는 29일 새벽 5시45분 충북 영동군 영동역에서 무궁화호를 탔다. 서울 영등포역에 도착한 것은 3시간 가까이 지난 오전 8시30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울 서초역을 향했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박근혜 석방’을 외치는 무리를 지나 오전 9시40분께 대법원 앞에 도착했다.
법원 경위는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있는 김씨를 3차례 막아섰다. 더 늦으면 안 됐다. 조끼를 벗고 법정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김씨가 길게는 8년, 짧게는 3년, 당장은 4시간15분을 기다렸던 재판 결과는 대법관의 입에서 몇 초 머물지 않았다. 게다가 수많은 사건에 섞여 묻히듯 지나갔다. 하지만 그 이름만큼은 김씨의 귀에 또렷하게 들어왔다. 심종두와 김주목. 창조컨설팅 대표와 전무다.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왼쪽)가 2012년 10월16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동 고용노동부 이룸에서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두한 뒤 나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김주목 전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조 파괴 자문으로 이름을 떨쳤던 두 사람에게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한 원심이 이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김씨는 짧은 순간 기뻤다. 하지만 곧 허탈함이 밀려왔다. 민주노총 대전·충북지부 유성기업 영동지회 사무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8년 만에 내려진 판결의 결과가 징역 1년2개월이라는 생각에 허탈함도 크다. 오랜 기간 그들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의 삶은 결국 지나간 세월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유성기업 노조 파괴로 보면 8년, 검찰이 심 대표 등을 기소한 지 3년 만에 나온 최종 판결이었다. 한때 간암 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받았던 심 대표는 최근 다시 수감됐고, 이날 판결로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한다.
2016년 6월14일 ‘유성범대위’와 유성기업지회 노동자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노조파괴 중단’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광호씨의 죽음을 추모하고 유성기업 사태 해결을 사회적으로 호소하는 ‘꽃길 100리’ 꽃상여 행진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010~2011년 쟁의행위를 한 유성기업과 발레오전장에 노동조합 와해 자문을 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방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창조컨설팅의 심 대표와 김 전무에게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이날 확정했다. 두 사람의 1·2심 판결문을 종합하면, 심 대표 등은 발레오전장에서 2010년 2월 경비업무 외주화와 관련해 쟁의행위가 발생하자 노무 자문을 맡아 경영진이 기존 노조를 와해하고 친기업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돕는 등 불법을 방조했다. 2011년 5월 주간 연속 2교대 도입과 관련해 파업이 진행 중이던 유성기업에서도 발레오전장에서와 유사한 불법을 저질렀다.
이날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은 두 건뿐이지만, 창조컨설팅은 그동안 여러 사업장의 노무 자문을 맡아 노조를 와해한 것으로 유명했다. 시작은 13년 전 영남대의료원 사건이었다.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은 2006년 8월 주5일제 도입과 관련한 인력 충원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병원 쪽은 불법 파업이라며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5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10명을 해고했다. 파업 전 900명이 넘었던 조합원 수는 지금 70여명으로 줄었다.
이 과정에 창조컨설팅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내용이 확인된 것은 6년이 지난 2012년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현장 용역폭력’ 청문회에서였다. 당시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과 <한겨레>는 창조컨설팅이 2011년 4월 작성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를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영남대의료원을 비롯해 상신브레이크·대림자동차·캡스·성애병원·레이크사이드컨트리클럽 등 창조컨설팅이 개입해 민주노조를 무력화한 12개 사업장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기 전인 2010년 나온 대법원 판결에서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10명 가운데 7명만 부당해고가 인정됐다. 당시 해고된 박문진 노조 지도위원과 송영숙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은 지난달 1일부터 60일째 대구 남구 영남대의료원 본관 옥상에서 노조 파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박문진 지도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당시 파업 때 회사 쪽이 너무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원래 파업 전야제 늦게까지 교섭을 하는데 그때는 아예 교섭장에 나타나지를 않았어요. 950여명의 조합원 중 250여명만 참가하는 부분 파업을 했는데도 수십억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고 해고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노사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죠. 나중에야 그것이 창조컨설팅의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너무 적은 형량이 선고돼 오늘 재판에 아쉬움도 크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노조 탄압이 묵인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 피해에 대한 법적 피해보상과 원상회복도 필요합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에 영남대의료원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다음 달 4일 ‘노동개악 중단. 노조파괴 처벌법 제정. 영남대 의료원 투쟁 승리를 위한 지역 집중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보건의료노조와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이 ‘노조 탄압 중단과 성실 교섭’을 촉구하며 2007년 11월29일 영남대의료원 로비에서 침묵시위와 칼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제공
노조 파괴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창조컨설팅이 공식처럼 정리한 무더기 해고 등 징계,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민주노조 고립, 친기업 노조 설립 등 일련의 시나리오는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손에손을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그동안 창조컨설팅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피해 노동자들을 숱하게 만났다. 윤 활동가는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는 100개가 훨씬 넘는 사업장에서 수백명의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몬 사람입니다. 그 고통에 견주면 1년2개월의 형량은 턱없이 적다고 느껴집니다. 오늘 판결이 난 사업장 외에도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창조컨설팅이 휩쓸고 간 사업장 대부분은 노조가 이미 파괴됐고 문제를 제기할 사람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과거 부당노동행위의 피해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로 이중의 고통을 주는 현실도 당장 바뀌어야 합니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법원 판결 이후 “민주노총은 오늘 판결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창조컨설팅 같은 유해단체와 이를 운영했던 인물들이 다시는 번성할 수 없도록 사회를 바꾸고, 제2의 심종두와 김주목을 꿈꾸지 못하도록 끝까지 추적하고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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