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12 참여와 혁신] 노사관계 숫자로 보기, 어떻게 달라져 왔나?

노사관계 숫자로 보기, 어떻게 달라져 왔나?

김란영 기자

원문보기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26

 

커버스토리 ⑤ 통계로 본 한국 노사관계

노동자 × 사용자 : 대한민국 노사관계

노동자와 사용자.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관계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는 갈등, 분규, 대립 등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다. 노사관계 당사자들도 한국 노사관계 정말 심각하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늘 그랬듯 질문을 던진다. 한국 노사관계를 둘러싼 문제가 무엇인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서로 상대방 탓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노사관계 당사자인 노동자와 사용자 외 다른 주체들이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사관계를 정의하는 일을 두고 그렇게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통계를 중심으로 노사관계를 만져보려 한다.

국민이 보는 노사관계
대체로 나빴고, 책임은 노사 모두

국민이 그린 노사관계의 자화상은 1989년 이래 대체로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노사관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2017년 노사관계를 ‘나쁘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전체 응답자 중 47.6%로 30년 전인 1989년(59.9%)보다 조금 개선된 수준이었다. (<그림1>참고)


국민들은 갈등의 책임을 노사 모두에게 지웠다. 갈등의 책임이 노사 모두에게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한국노동연구원이 실시한 1989년(71.3%), 2007년(76.6%), 2010년(75.2%), 2017년(72.5%) 네 차례 조사 모두에서 70%대를 유지했다.

다만, 노사갈등의 책임이 사용자 또는 노동조합 쪽에 있다는 응답은 1989년과 2000년 이후에 크게 차이가 났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인 1989년 인식조사에서는 기업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률이 24.9%였던 반면, 노동조합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률은 3.3%에 불과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07년엔 수치가 역전됐다. 당시 기업에게 책임이 있다는 응답률은 9.3%로 낮아졌고 노동조합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률이 13.4%로 크게 증가했다. 최근 조사에선 다시 뒤집어져 노동조합(11.9%)보다는 기업(15.6%)에 책임을 무는 쪽이 많았는데 그 격차가 크지 않다. 2000년대 이후엔 기업과 노동조합의 갈등에 대한 책임 수준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그림2>참고)

 

파업건수, 근로손실일수 하향 추세
노조 조직률 유지되고 조합원 수 늘었다

본격적으로 노사관계의 결과물로 들어가 보자. 먼저 임금교섭진도율은 1989년 이후 낮아지는 추세다. 임금교섭진도율은 상용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임금교섭을 끝낸 사업장의 비율을 말한다. 임금교섭진도율이 높을수록 임금에 대한 노사 간의 이견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뜻이다. 최근엔 임금교섭이 예년보다 조금씩 빠르게 마무리되고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위기 속에서 양보 교섭 전략을 취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일례로 그는 지난해 12월 말 고용보장을 전제로 기본급 동결(현대중공업) 또는 1% 미만의 인상(대우조선해양)에 합의한 조선업을 예로 들었다. (<‘임중도원’의 노사관계: 2018년 평가와 2019년 전망>,2019) 마찬가지로 지난 2011년(81.0%) 교섭진도율이 전년도(58.2%)보다 크게 오른 것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3> 참고)


파업건수는 2000년대에 들어 다소 기복을 보이다가 2004년을 분수령으로 크게 떨어진 예년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파업건수보다는 근로손실일수의 변화가 노사관계를 더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이정희 부연구위원의 설명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파업건수를 집계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사업장별로 파업건수를 집계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산별노조의 파업에 복수의 사업장 단위 지부가 참여한 경우에도 산별노조 파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근로손실일수는 1987년 700만 일에 달하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크게 떨어졌다.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사가 신속히 게임의 규칙을 익혔다”고 조성재 전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설명했다. 조성재 전 본부장은 “1990년대 중반이 되면 파업성향이(근로손실일수/임금근로자수*1000)이 100 미만으로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정도의 갈등 수준을 나타냈다”며 “우리나라 노사가 적어도 임금교섭과 관련해서는 갈등을 관리할 역량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노사관계 시스템의 전환과 노동과제 정책>, 2017)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갈등의 불은 한 번 더 지펴졌다. 노사 간의 쟁점이 구조조정과 고용문제로 옮겨 붙으면서다. 근로손실일수는 2000년대 중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조성재 전 본부장은 이 시기에 “사용자가 손배·가압류, 외주화라는 수단 외에도 변호사, 노무사 등의 도움을 받아 노무관리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반면 “노동운동은 과거의 운동방식을 답습해 후퇴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위기 이후엔 파업건수와 근로손실일수가 ‘표면적’으로 줄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조성재 전 본부장은 “노동현장의 갈등은 내연하거나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형태로 개별화되고 형식화됐다. 고용에 관해 대기업과 공기업 중심의 노사 협력과 담합이 고착화되는 한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중심의 배제와 갈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2016년엔 근로손실일수가 1990년대 초반 수준으로 회귀하기도 했다. 당시 파업손실일수는 203만 5,000일로 전년도보다 5배가량 올랐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성과연봉제 추진에 반대하는 공공부문의 파업, 공영방송 정상화와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는 방송산업의 파업,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임금을 둘러싼 파업 등이 장기화됐기 때문이다. 그해 파업건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근로손실일수는 예년보다 파업 건수가 감소하더라도 증가할 수 있는데, 이는 기업의 파업이 장기화됐기 때문이다. (<그림4>참고)

노동조합 조직률은 노동자 대투쟁 직후 1989년 19.8%로 정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여 2010년에는 9.8%까지 떨어졌다. 작년 말 기준 노조 조직률(10.7%)은 2008년(10.8%)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지만 여전히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원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지난해 12월에 집계된 2017년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보면 조합원 수는 208만 9,000명으로 전년(196만 7,000명)보다 12만 2,000명 증가했다. 조직률이 더 높았던 1989년(19.8%, 193만 2,000명)보다도 15만 6,000여 명 많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국제적으로도 낮은 수준이다. OECD 주요 회원국의 2016년 기준 노조 가입률을 보면 핀란드(64.6%)를 비롯해 영국(23.7%), 네덜란드(17.3%), 일본(17.3%), 독일(17.0%) 등이 한국을 크게 웃돈다. 노조 조직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자들의 이해 대변 기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더욱이 노조 조직이 대기업에 편중된 점도 문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57.3%에 이르지만, 30인 미만의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3.5%에 불과하다. 경영계 대표도 대기업이 중심이 돼왔다. 이러한 이해 대변의 구조적 불평등에 따른 대표성의 취약성은 노사관계 시스템이 실패한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지난 35년여 동안 노동시장 내 사업체 규모 간 임금격차가 빠르게 벌어졌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1980년대 초반 10%에서 2010년 중반이 되면서 50% 내외에 이르고 있다.

다만, 조직률과 조합원 수 모두가 하향 추세에 있는 다른 선진국과 다르게 적어도 조합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총연맹별 조합원 수를 보면 민주노총 조합원 수 증가규모(6만 1,816명)가 한국노총(3만 1,206명)의 2배가량 됐다. 2017년 기준 민주노총 조합원 수와 한국노총 조합원 수는 각각 71만 1,143명, 87만 2,923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초기업단위(산업·업종·지역별 노조)의 노동조합 조합원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2016년과 비교해 2017년 전체 조합원 가운데 기업별노조 조합원 비율은 44.7%에서 43.4%로 줄어든 반면 초기업노조 조합원 비율은 55.3%에서 56.6%로 늘었다. 양대 노총 중엔 민주노총(83.1%)이 한국노총(45.8%)보다 초기업노조 조합원 비율이 높았다. 이에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업별 교섭이 지배적인 한국에서 초기업단위 단체교섭 활성화를 위한 주체의 노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 노사관계에 대한 양적 지표 가운데 사용자 단체에 관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OECD에는 한국의 사용자단체 조직률이 10%를 갓 넘은 것으로 보고되는데, 포함되는 사용자단체의 범위와 조직률 산정의 기준은 모호하다. 노조법에 따라 법인이 설립된 사용자단체는 산업별로 금속과 금융산업 사용자단체 2곳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설명이다. 다만, 그는 지난해 노사관계는 “전통적으로 사용자단체로 기능해왔던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역할이 대폭 줄어든 반면 대한상의(대한상공회의소)와 소상공인연합회 등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해졌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그림 5>참고)

 

우리나라 노사관계, 세계적 꼴찌…
앞으로는?

노사관계 경쟁력은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노사협력 부분에서 평가대상 63개국 중 꼴찌였다. 이는 15년 전인 2004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우리나라 노사관계 경쟁력은 전체 60개국 중 60위였다. 이러한 위상이 비단 지난해만의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는 WEF(세계경제포럼) 평가에서도 140개국 중 124위를 차지했다. 경영계에서도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자료출처
<‘임중도원’의 노사관계: 2018년 평가와 2019년 전망>,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총론: 노사관계 시스템의 전환과 노동정책 과제>,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한국노사관계의 진단과 처방: 합리화의 길>, 2008년, 김대환
<2017년 노사관계 국민의식조사 연구>, 2017년, 한국노동연구원, 장홍근, 이정희, 정흥준, 설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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