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8 민중의 소리] ‘개천의 용간지’ 본 쌍차 노동자 “10년 만에 공장으로...하지만 싸움 안 끝났다”

‘개천의 용간지’ 본 쌍차 노동자 “10년 만에 공장으로...하지만 싸움 안 끝났다”

김세운 기자 ksw@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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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과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를 모티브로 한 연극 ‘개천의 용간지’를 5일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본 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07.05)

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과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를 모티브로 한 연극 ‘개천의 용간지’를 5일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본 후,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9.07.05)ⓒ김세운 기자

 

“쌍용자동차 동료들의 희생으로 해고자들이 7월 1일부로 공장으로 돌아갔다. 10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 기쁨을 누렸지만, 아직 우리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연극 ‘개천의 용간지’ 무대가 끝난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은 “2009년 벌어진 참사로 인해서 저희에겐 손배가압류 문제가 남아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정욱 사무국장은 5일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상연된 ‘개천의 용간지’를 본 후 “저희 이야기가 나오는 게 불편하기도 했다”면서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야 하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봤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하지만 관객들과 대화를 하면서 아픈 것을 담아두는 게 아니라 토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저희는 철탑 위에, 굴뚝 위에 몇 번씩 올라갔을 때에도 우리 이야기를 끊임없이 표현했다”고 떠올렸다.

‘개천의 용간지’는 해고된 어른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나름의 생존방식과 투쟁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함께 살자’, ‘해고는 살인’이라는 어른들의 투쟁 속에서 해고통지서가 담긴 노란 봉투가 집마다 배달되고, 20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끊는 상황을 아이들은 지켜본다.

작품을 쓴 한현주 극작가는 “실제로 평택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거기 상담하는 전문 선생님이 그러시길 이 학교에 (쌍용 자동차와) 많은 학생들이 관계돼 있지 않았지만 이 학교에도 없지 않다고 이야기 하셨다”며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그러는 것은 상처 때문일 수도 있고, 친구의 상처를 바라보는 게 힘들 거나 혹은 그 이야기들이 일상에 가져다준 파급이 크니까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며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청소년 시각에서 어른들의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을 같이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극 ‘개천의 용간지’

연극 ‘개천의 용간지’ⓒ극단 창세

“공연 장면은 10년간 실제 있었던
한 노동자의 모습과 일치한다”

작품을 본 한 관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잘 몰랐던 투쟁 기록들을 마주한 것 같아서 죄송하고 감사하다”라고 말했고, 또 다른 관객은 “곧 서울대병원에 입사하는데 노조가 있더라. 그 시대의 노조운동으로 인해서 지금의 노조 기틀을 마련한 게 아닌가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극 중 어른들은 자신들을 해고한 회사의 고장 난 제품을 보고서 분노하지 않는다. 해당 장면을 연기한 박래영 배우는 “고장 난 TV를 보면서 죽음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아니라 ‘다시 일하고 싶다’는 설정으로 연기를 했다”고 설명했고 김정욱 사무국장과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정욱 사무국장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다녔던 회사의 제품을 고치는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며 “공장 밖으로 밀려난 뒤 우리끼리 아니면 연대자가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고돼서 직원도 아닌데 자꾸 ‘우리 회사’라고 말하고 노동 관련된 이야기 할 때도 쌍용자동차 좋다고 이야기한다”고 웃어 보였다.

한현주 극작가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의 TV는 정말 부숴버리고 싶고 나와 가족을 파괴한 상징물일 것”이라며 “하지만 정작 TV를 만든 해고 노동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노동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하며 썼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 작품은 ‘전태일기념관 2019 상반기 지원사업’ 선정작, ‘서울문화재단 2019 예술작품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지난 6월 전태일기념관에서 1차 상연된 바 있다. 7월 대학로 무대가 2차 상연인 셈이다. 초연은 2014년도로, 쌍용자동차의 긴 투쟁의 연장선에서 함께 호흡해 왔다.

10년간 쌍용자동차 투쟁에 변화가 있었듯 작품에도 변화가 있었다. 작품을 연출한 백석현 연출가는 “초연 때는 인물을 도드라지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지금은 드라마가 더 쌓여서 보여지도록 하고 싶었다. 대량 해고 이후 상황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어떤 것들을 감각 하고 사유하면 좋을지에 대한 변화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복기성 수석부지회장은 “공연의 장면들은 실제 10년간 있었던 어느 노동자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해도 무관하다”며 “쌍용자동차에서 대규모 해고가 있었고 올해 모두 전원 복직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해고 문제만 해결됐지 여전히 현장에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 해고 문제는 여전하다. 지금처럼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될 수도 있다. 기술력만 다 빼가고 10년 전처럼 구조조정을 할 수 있고 공장문이 닫히면 가장 먼저 노동자를 내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문제가 안 생기면 좋겠지만 한국 사회는 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저는 이 극장이 낯설지 않다. 예전에 쌍용자동차 문제로 연극을 했던 팀도 있고 삼성 반도체 문제로 극장에 간 적도 있다”며 “관객들도 노동자다. 이런 문제에 관심 가져주고 계속 알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한편,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한 후 해고자들은 이에 반발해 10년 동안 투쟁을 이어왔다. 이 기간 동안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긴 투쟁을 끝으로 지난 1일 정리해고자들이 모두 복직했지만 정리해고 투쟁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 소송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연극 ‘개천의 용간지’엔 김윤하, 김자영, 김주영, 마광현, 박래영, 임성균 등이 출연했다.

연극 ‘개천의 용간지’를 연출한 백석현 연출가(왼쪽)가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후 관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2019.07.05)

연극 ‘개천의 용간지’를 연출한 백석현 연출가(왼쪽)가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후 관객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2019.07.05)ⓒ김세운 기자

5일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진행된 연극 ‘개천의 용간지’ 관객과의 대화에서 출연진들이 관객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9.07.05)

5일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진행된 연극 ‘개천의 용간지’ 관객과의 대화에서 출연진들이 관객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9.07.05)ⓒ김세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