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권침해 사건 ‘사과 권고’ 뭉개며 인권 ‘2차 가해’
경향신문 / 고희진, 탁지영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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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등 8개 사건 공식사과 ‘0’…손배 취하 버티기
진상조사위·피해자 단체 “민갑룡 청장, 즉각 이행하라”
경찰 인권침해 8대 사건 피해자 단체 관계자들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국가폭력 사과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권고사항 즉각 이행 등을 촉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용산참사 등 8개 사건에서 경찰의 인권침해를 확인하고 사과를 권고했지만 경찰은 관련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쌍용자동차 노조원, 고 백남기 농민 사건 당시 시위 참가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하 권고도 경찰은 10개월째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진상조사위는 그간 용산참사·평택 쌍용자동차 파업·밀양 및 청도 송전탑 건설·제주 강정마을·고 백남기 농민 사건·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시신 탈취·KBS 공권력 투입·공익신고자 입건 및 부당수사 사건 등을 조사했다.
27일 위은진 진상조사위 간사위원은 “경찰이 제도 개선책은 마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공식 사과를 한 경우는 없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공권력 남용의 대표적인 문제로 꼽히는 정보경찰 통제 방안을 두고도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쌍용자동차 노조원 등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도 취하하지 않았다. 변사사건 처리 지침을 마련하고 경찰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지원하겠다는 등 일부 권고 사항에 대한 이행 방안만 발표했다.
다음달 진상조사위 해산을 앞두고도 경찰의 사과와 개선책 마련 움직임이 없자 피해자 단체들이 직접 나섰다. 용산참사, 쌍용차 강제진압,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관련 피해자 단체들은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진상조사위 권고 즉각 이행 촉구 및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민갑룡 경찰청장이 최초 권고로부터 10개월이 지나도록 사과 및 손배가압류 철회와 같은 핵심적인 권고 이행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 측에서는 백남기 농민 유가족에게만 사과하러 갔을 뿐 나머지 국가폭력 희생자 및 관계자들에게는 사과가 없었다. 해당 사과도 일방적인 방문이어서 유가족이 거부하는 등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피해자들이 사과해 달라고 몇 번이나 구걸하듯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비참하다”면서 “며칠 전에는 사과도 받지 못하고 용산참사 생존 철거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용산참사 당시 남일당 망루에서 농성하다 붙잡혀 3년9개월 옥고를 치른 뒤 풀려난 김모씨(49)가 각종 트라우마에 시달려 병원 치료를 받다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여기 온 사람들은) 길게는 10년 동안 잔인한 국가폭력을 당했다”며 “경찰청장은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고 피해자들과 의논해서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진정성 있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는 다음달 백서 발간과 보고대회를 끝으로 공식 활동을 마친다. 민 청장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현안질의에서 “강정마을 사건을 포함해 진상조사위가 권고한 여러 사안에 대해 7월 종합적인 점검회의를 거쳐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