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31 매일노동뉴스] 쌍용차 복직노동자 '첫 월급통장' 털어 간 국가

쌍용차 복직노동자 '첫 월급통장' 털어 간 국가

노동자 죽이는 국가 손배·가압류 제도개선 시급

배혜정 기자 bhj@labortoday.co.kr

원문보기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582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쌍용차범대위, 국가손해배상대응모임 회원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복직한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가압류와 국가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를 촉구했다. 당사자인 김정욱 지부 사무국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처참했습니다. 첫 월급을 받으면 가족과 외식도 하고 10년 동안 저희를 돌봐 주신 분들께 고맙다고 성의표시를 하고 싶었는데, 그 돈을 받고 나니 차마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12월31일 10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이 복직 뒤 지난 25일 받은 첫 급여명세서에는 실지급액 '85만1천543원'이 찍혀 있었다. 1인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이다. 그가 받은 월급보다 많은 91만원이 '법정채무금 공제'라는 항목으로 빠져나갔다. '인출인'은 대한민국 경찰. 경찰은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파손된 헬기·크레인 등 장비 값 등을 물어내라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16억8천만원을 청구했고, 이에 따라 임금이 가압류된 것이다.

"월급 타면 가족과 외식하고 싶었는데…"

국가손해배상대응모임·쌍용차지부·쌍용차희생자추모 및 국가손배철회 범국민대책위원회와 함께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선 김정욱 사무국장은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도 2009년 쌍용차 진압이 노조파괴를 위한 정부·경찰·회사의 합동작전이란 사실을 확인했다"며 "더는 노동자들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경찰의 국가손배청구에 따른 가압류로 임금을 떼인 복직노동자는 김 국장뿐만이 아니다. 장아무개씨와 최아무개씨 통장에서도 각각 19만771원, 123만원이 사라졌다. 

경찰이 지부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2심까지 진행됐다. 2016년 2심 이후 가압류 일부가 풀리긴 했지만 현재까지 노동자 39명에게 1천만원씩 총 3억9천만원의 임금·퇴직금 가압류가 걸려 있다. 채무자 39명 중 3명(김정욱·장씨·최씨)은 2009년 해고 당시 퇴직금이 1천만원이 되지 않아 가압류 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이들이 지난해 12월 말 복직해 소득이 생기자 첫 월급에 압류가 집행된 것이다. 아직 복직하지 못한 노동자 12명이 복직하면 이들에게도 가압류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는 지난해 8월 쌍용차 파업 관련 보고서를 내고 '경찰의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를 권고했다. 5개월을 기다린 노동자들에게 경찰청은 '월급 가압류'로 답변한 셈이다.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는 헬기와 테이저건을 사용한 파업 진압이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내부지침을 위반한 진압이라고 결정했다"며 "위법한 진압에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에 대한 국가의 손배·가압류는 국가폭력이자 적폐"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밝혀낸 국가폭력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도 공감한 노동적폐 '손배·가압류' 제도개선 시급

쟁의행위를 한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회사나 국가의 손배·가압류는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한 노동적폐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 "손해배상과 가압류 남용은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라며 "이런 현실을 국민의 힘으로 바꿔 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천문학적인 손배·가압류로 노동자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와 민주노총이 집계한 '2017년 상반기 손해배상 가압류 현황'에 따르면 노동자 대상 손배·가압류 건수와 금액은 24개 사업장 65건에 누적 청구금액 1천867억원, 가압류 180억원에 달한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는 액수다. 

손배·가압류에 마지막 희망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주중씨는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액으로 퇴직금·부동산을 가압류당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해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영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24일 열린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공권력을 통해 파업노동자들을 체포·구속하면서 노동운동을 탄압했다면 이제는 법원 판결로 가해지는 손배·가압류가 신종 노동탄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며 "손배·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송 변호사는 "개인과 신원보증인에 대한 손해배상은 금지하고, 노동조합의 손해배상액 책임상한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