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1 한겨레] 기계에 끼어 사망한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4시간 방치

기계에 끼어 사망한 24살 비정규직 노동자 4시간 방치

정환봉 선담은 최하얀 기자, 태안/송인걸 기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3971.html

 

문 대통령 면담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기자회견에서
이날 새벽에 숨진 24살 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죽음 알려져
비정규직 대표 100인 “더이상 죽지 않게 해달라” 호소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고 김용균씨가 ‘비정규직 그만 쓰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추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100인의 대화’에 참가 신청을 하려 인증 사진을 찍고 있다. 김씨는 위 사진을 찍은 지 두달 만인 11일 새벽 일터인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태안 화력발전소의 석탄취급 설비운전을 위탁받은 한국발전기술의 현장 운전원으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제공.

24살 청년은 방탄소년단 노래를 즐겨 불렀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뭐든지 잘 먹었는데, 특히 치킨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청년을 두고 “밝으면서도 조용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며, 열정이 넘쳤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 9월17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현장설비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생애 첫 직장이었는데, 1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조건이었다. 청년은 얼마 전 가족에게 ‘힘들기는 한데 배우는 단계이니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청년 김용균(24)씨는 그러나, 밤샘 일을 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다. 11일 오전 3시20분께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 트랜스포머 타워 04시(C) 구역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서 현장 점검을 위한 순찰 업무를 하던 도중이었다. 김씨를 발견한 동료 이아무개(62)씨는 경찰에서 “전날 밤 근무에 투입된 김씨가 전화를 받지 않아 찾다 보니 기계에 끼여 숨져있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10일 오후 6시에 현장에 투입돼 11일 아침 7시30분까지 발전소 내부 4~5㎞ 정도 거리를 혼자 걸어서 순찰하는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김씨는 밤 10시21분 이씨와 한차례 통화했고 14분 뒤 사고 현장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걸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기계에 끼여 숨진 지 4시간여 만에 발견됐다.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화력발전소에서 김씨는 동료 11명과 함께 1일 4조2교대로 일했다. 주간-야간-휴무-휴무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주간일 때는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저녁 6시30분까지 11시간, 야간일 때는 저녁 6시30분에 출근해 13시간이 지난 다음 날 아침 7시30분에 퇴근한다. 근무 시간에는 휴식이 없다.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도중 발언하며 흐느끼는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 씨의 모습. 전국공공운수노조 제공

김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알려졌다. 비정규직들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을 연 ‘비정규직 그만 쓰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지난달 12일부터 나흘간 문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청와대와 대검찰청, 국회 앞 등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했다.

 

자신을 “20년째 전기를 만드는 노동자”라고 소개한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이태성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오늘 동료를 잃었다. 24살 꽃다운 청년이 석탄 이송하는 기계에 끼여 머리가 절단났다”며 울먹였다. 이씨는 또 “지난 10월18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고. 그런데 오늘 또 동료를 잃었다. 이제 더는 내 옆에서 죽는 동료를 보고 싶지 않다”며 “하청 노동자이지만 국민이다. 제발 더 죽지 않게 해달라. 그 길은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처참한 죽음과 이후로도 그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오랜 시간 방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기자회견장은 금세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더구나 김씨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 참가 신청을 위해 2달 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 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씨에 이어 발언자로 나선 케이티(KT) 외주업체 노동자 김철수씨는 “지금 이야기를 듣고 나도 똑같은 상황에서 차에 치여 맨홀에 빠져 죽은 동료가 생각났다. 내 손으로 밧줄 끌어 올려서 119타고 대학병원에 갔다. 응급실에서는 현장 즉사라는 판정을 받았다”며 “(회사는 동료를) 산재처리 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처리해 숨기려다가 변호사 통해 산재처리 한 경험이 있다”고 말하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발생한 케이티 아현국사 화재 이후 선로를 복구하는 작업은 모두 김씨와 같은 외주업체 직원이 맡고 있다. 하지만 수당은 수년째 오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통신선로 까는 일만 수십 년 했다. 일당이 14만원이다. 우리 인건비는 왜 안 오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집에 돈 150만원 가져다주면 생활이 안 된다. 더이상 빚도 낼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처음 찾았던 노동 현장인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도 무대 위에 올랐다. 그는 “5월12일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와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다시 상기시키고 싶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절박한 심정이다. 한낱 꿈, 희망이 아닌 절박한 심정이, 우리의 마음이 전해지고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기간제 교사, 화물차 운전 등 비정규직을 대표해 기자회견에 나선 노동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호소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첫 업무지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였다. 2017년 5월12일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던 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희망을 꿈꿨다. 1년6개월이 지난 오늘, 인천공항에서는 그 어떤 비정규직도 정규직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강릉선 케이티엑스(KTX) 열차가 선로를 이탈했던 8일 오전 7시35분 가장 당황한 것은 열차에 타고 있던 승무원이었다. 누구도 이들에게 현재 어떤 상황이고, 무슨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철도공사가 아닌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이었기 때문“이라며 “케이티엑스 선로이탈과 케이티 통신 대란을 비롯한 연이은 사고의 다른 이름은 위험의 외주화다”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대표 100인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과 사용자 처벌,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파견법·기간제법 폐기 등을 요구하며 문 대통령에게 “청와대든 광화문 광장이든 티브이(TV) 토론이든 어디서도 좋으니 한 번 만나달라”고 요구했다.

 

김씨의 죽음도 한국의 어느 노동 현장과 마찬가지로 한국서부발전이 단가를 낮게 제시하는 하청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2인1조 업무를 돌리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동료 노동자들은 입을 모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 지회가 이날 공개한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주요 안전사고/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2010년부터 8년 동안 이 발전소에서는 모두 12명의 하청 노동자가 추락 사고나 매몰 사고, 쇠망치에 맞는 사고나 대형 크레인 전복 사고, 김씨와 같은 협착 사고로 숨졌다. 부상자도 19명이었다. 김씨와 함께 일한 한아무개(26)씨는 “컨베이어벨트가 힘이 세니까 기계에 몸이 달려가는 일이 종종 있는데, 2인1조로 일하면 안전 스위치가 있어서 다른 동료가 줄을 당기면 기계가 멈춘다”며 “순찰할 때 한 사람씩만 들어간 게 문제”라고 말했다.

 

경찰과 노동당국도 회사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김씨가 1인 근무를 하게 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쪽은 경찰에서 ‘근무 매뉴얼에 2인1조 근무 원칙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오버홀(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진행하는 계획 정비) 중에는 2인1조를 반드시 구성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상 운영 중 순찰은 혼자 하게 되어 있다”며 “우리가 그 제도를 만든 건 아니고 이 업무를 책임지고 하는 한국발전기술이 그렇게 운용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하루 근무자가 12명이지만, 운전원 등을 제외하면 실제 현장 근무 인원은 6명에 불과해 관례적으로 1인 근무를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 근무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법 위반 여부 등도 가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환봉 선담은 최하얀 기자, 태안/송인걸 기자 bonge@hani.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