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130만원 버는데 301억원 배상하라니…손배·가압류는 사람처럼 살지 말라는 것”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회사가 손해배상액으로 청구한 301억원이라는 돈이 실감이 안 났다. 한 달에 130만원 받는 제가 평생 일해도 통장에 1억원도 안 모일 텐데…. 당시 현장에서 일할 때도 눈물이 나고 집에 돌아와 방 안에서도 눈물이 났다. 손배·가압류는 노동자들한테 사람처럼 살지 말라는 소리 같다.”
30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 경북 구미의 반도체 업체 KEC 노동자 김순희씨가 손배·가압류 피해 당사자로 증언을 하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금속노조 KEC지회는 임금 인상, 고용안정,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등을 둘러싼 사측과의 교섭이 결렬되자 2010년 6월21일부터 파업에 들어갔고 사측은 6월30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지회는 2011년 5월 파업 철회를 선언했으며 사측은 6월13일 직장폐쇄를 풀었다. 이후 사측은 지회와 조합원 88명을 상대로 30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심이 진행 중이다. 김씨는 “연내 1심이 선고될 텐데 재판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며 “2010년 결혼했는데 아직 아이가 없다. 물려줄 게 빚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를 낳고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손잡고는 이날 올해 8월 현재 민주노총 사업장 20곳(57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액이 총 1521억원9295만원이라고 밝혔다. 가압류는 총 144억여원으로 집계됐다. 손잡고는 “이명박 정부 이후 기업들의 손해배상 청구액이 1000억원대 진입한 뒤 현재까지 큰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가압류 신청 대상도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동양시멘트(현 삼표) 해고자 박상근씨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500일 넘게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박씨를 포함한 해고 노동자들이 지난해 3~4월 동양시멘트 49광구 현장을 점거하고 업무방해를 했다는 이유로 약 1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해고자 일부의 부동산·채권, 임차보증금 등 총 5억9000만원의 가압류를 집행했다. 박씨는 “사실 체감을 하지 못했는데 은행 가서 보니 채권이 가압류돼 있었다. 집을 살 계획이었는데 보증금이 묶여서 전세금 올려주고 재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위 전광판에서 지난해 6월11일부터 1년가량 고공농성을 벌였던 기아자동차 사내하청분회의 최정명·한규협씨는 땅을 밟자마자 거액을 함께 물어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전광판 업체가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5억4200여만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TV, 냉장고, 세탁기 등 세간살이에 빨간 딱지가 붙었고 최근 경매절차까지 진행됐다”며 “경매로 회수한 채권액 수백만원은 손해배상액 전체 중 극히 일부다. 다시 말해 가압류 목적은 재산상 손해를 원상회복하는 데 있다기보다 우리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에게 경매 장면을 보여줄 수 없어 미리 데리고 나왔고 아내가 경매에 참여했다”며 “이런 가압류 방식이 자본이 노동자에게 가하는 신종 탄압 수단으로 보편화될까봐 우려스럽다”고 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말 노사 합의로 사측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취하했다. 하지만 국가(경찰)가 2009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파업 진압 과정에서 장비 손상 등을 이유로 제기한 소송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8년간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을 국가가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사용자들이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액을 확정해놓고 집행을 안 하기도 한다.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면 예전에 확정된 금액을 집행할 수 있다며 압박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3권 행사를 통제한다”고 말했다.
손잡고는 20대 국회에 사용자들의 무분별한 손해·가압류를 막을 수 있는 노조법 개정안을 야3당과의 협의를 통해 발의할 예정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301656001&code=9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