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작년 노조 손배·가압류 1554억…"노조 탄압의 종착점"
1월기준 코레일 노조 등 18개 사업장에 손배소…6곳은 가압류까지
지난해까지 기업이 노동조합에 제기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액수만 1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팀이 민주노총과 '손잡고'(손해배상·가압류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모임)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올해 1월 기준으로 사측과 손해배상, 가압류를 진행 중인 민노총 소속 사업장은 18곳에 달했다. 사측이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1404억9300만원, 가압류는 7개 사업장에서 149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둘을 더하면 1554억3300만원에 이른다.
손해배상이 청구된 18개 사업장은 코레일 노조(313억2000만원), KEC지회(300억원), 한진중공업(158억1000만원),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지회(225억6000만원), MBC(195억1000만원), 유성기업(57억5000만원), 만도지부(30억원), DKC지회(26억원), 현대차 전주 비정규직지회(25억6000만원),발레오만도(26억5000만원), 현대차 아산 사내하청지회(16억7000만원), 생탁(10억원), 보쉬전장(2억1000만원), 속초의료원(1억원), 기아차지부(3300만원), 콘티넨탈(3000만원) 등이다. 2015년에는 동양시멘트(16억원)와 고려수요양병원(9000만원) 등 2곳에서 새로 손해배상이 청구됐다.
가압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18개 사업장 중 6곳에서 신청됐다. 코레일 노조 116억원을 비롯해 MBC(22억원), DKC지회(10억원), KEC지회와 현대차 전주 비정규직지회(각 5000만원), 현대차 아산 사내하청지회(4000만원) 등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목적은 경영상 손해를 명분으로 한 노조 탄압이라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민노총에 따르면 코레일 노조는 2009년 총파업과 2013년 수서발 KTX노선을 반대하며 총파업을 진행, 코레일에 막대한 재산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떠안았다. KEC지회도 2010년 조합원들이 벌인 공장점거 파업을 놓고 사측이 재산상 손실을 손배소와 가압류로 청구한 상태다.
3개의 노조 지회에 267억9000만원의 손해배상과 9000만원의 가압류를 청구한 현대차 역시 노조가 2010년 공장을 점거하며 진행한 파업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묻고 있다.
사측에 영업과 재산상 피해가 없더라도 노조의 쟁의행위가 불법으로 인정, 사측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최승현 노무법인 삶 대표노무사는 "우리나라는 노조의 쟁의행위 정당성의 요건을 엄청나게 좁게 보고 근로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만 정당성을 인정한다"며 "2013년 코레일 노조의 철도파업을 봐도, 당시 노조는 파업 절차를 지켰지만 임금인상 요구 외에 '철도민영화 반대'라고 외친 것이 문제가 돼 검찰이 불법파업으로 고소했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부산의 막걸리 제조업체인 생탁은 지난 2014년 노조가 파업 중 사용한 현수막과 피켓의 문구를 걸고 넘어졌다. 사측은 노조가 쓴 '근로자의 피를 빨아먹는 25명의 사장들은 각성하라'는 문구를 문제 삼아 노조가 사장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노조원 8명에게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소송은 1년여를 끌었고 판결을 맡은 부산지방법원은 지난달 4일 사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보름 뒤 사측은 항소했다.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산하 고려수요양병원도 생탁과 같은 상황이다. 요양병원 노조는 지난해 초 노조 결의대회 중 '구멍난 옷 좀 입히지 말고 깨끗한 옷 제공해라'는 내용의 피켓을 제작하고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가 병원 측으로부터 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았다. 현재 고려수요양병원 노조는 병원 측과 재판을 진행 중이다.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자 종착점이다. 노동계에 따르면, 사측의 노조 탄압은 '직장폐쇄→용역투입→노조원 출근차단→노조탈퇴 강요→제2노조 신설→기존 노조 탈퇴자 선별적 직장 복귀→제2노조 가입 강요→징계→손해배상·가압류' 순서로 진행된다. 사측은 노동자들이 평생을 벌어도 못 갚을 수억원대 배상금을 청구, 경제적으로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타격을 준다.
'손잡고' 운영의 실무를 맡고 있는 윤지선 활동가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단순히 경제적인 압박만이 아니라 노조 활동을 막고 노조를 파괴하는 게 주된 목적"이라며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1인당 물어내야 할 액수가 어마하기도 하지만 사측에서 이를 빌미로 소송을 취하할 테니 노조에서 탈퇴하라며 회유하는 정서적 괴롭힘이 더 악랄하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노동계는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노동 3권을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박은정 민노총 정책국장은 "노조의 쟁의행위는 그 자체가 기본권의 행사며, 헌법적 질서이므로 쟁의행위로 발생한 재산상 손해는 원천적으로 배상책임을 묻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과거에는 손해배상이 사측의 교섭 압박 수단으로 활용돼 교섭이 마무리되면 소송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로는 교섭타결 여부와 관계없이 소송을 유지하면서 노조 무력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최승현 노무사는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사용하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아예 손해배상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배상 청구액을 제한하는 등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병호·윤선훈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