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2.02 한겨레][기고] 노동자 두 번 죽이는 손배가압류 /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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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손잡고 공동대표

 

“조합원들께 모두 미안합니다. 저 너무 힘들어 죽을랍니다. 제가 죽으면 꼭 정규직 들어가서 편히 사세요. 현대에게 꼭 이기세요.”

 

이달 초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성아무개(38) 조합원이 수면제 30알을 삼키며 남긴 유서의 일부다. 다행히 동료들에게 일찍 발견되어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위세척을 거부하는 등 죽음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이 인정되어 정규직으로의 전환은 물론, 그동안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상의 길이 열렸다. 그런데, 왜 죽음의 길을 선택했을까?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회사의 불법에 맞서 벌인 정규직화 싸움은 가시밭길이었다. 2004년 노동부가 특별감사를 통해 현대차의 모든 사내하청업체(127개)의 모든 공정(9234공정)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이래, 2010년 대법원이 확정 판결을 했고, 마침내 10년 만인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이 근로자 지위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회사 쪽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해고자만도 220명에 이르고, 울산공장에서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번이나 구속됐다. 그 과정에서 류기혁, 박정식 두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목숨을 끊었다.

 

현대차 자본의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불법적 대응은 집요하고도 악랄했다. 법원의 판결까지 무시하면서 노동자들의 가장 아픈 곳을 파고들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 신청이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때로 징역형보다 고액의 벌금형을 더 두려워한다. 실형은 몸으로 때울 수도 있지만 벌금형은 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노동자들의 이런 비참한 현실을 악용했다.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배소를 청구하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자료를 보면, 2010년 대법원 판결을 지키라는 요구를 걸고 벌인 25일간의 파업에 대해, 회사 쪽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모두 7건이고 이 가운데 5건은 항소심 진행 중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 판결 이후 2010년 파업 관련 손배소송이 속도를 내고 있다. 10월23일 울산지법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22명에게 7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또 12월3일에는 부산고법에서 2건(90억원, 10억원)의 판결이 예정되어 있다. 다음날인 4일에는 20억원짜리 손배소 심리가 열린다.

 

이것만이 아니다. 2012~2013년에 제기한 손배소송도 10건 이상 준비 중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이 재판에 끌려다니느라 이미 1억원이 넘는 소송인지대를 납부해야 했으며, 소송이 거듭될수록 금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 12월3일로 예정된 2건의 선고 결과가 1심 판결을 유지할 경우 상고심 인지대로 1억원 이상을 내야 한다. 비용을 댈 수 없어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현대차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현대차는 파업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이라는 ‘폭탄’을 퍼부어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로 형이 확정되면, 가압류의 집행으로 노동자들을 최악의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속셈이다. 오죽했으면 한진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이 손배가압류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겠는가?

 

현대차 회사 쪽은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집요하게 해당 비정규노동자를 찾아다니며 손배소 취하 등을 미끼로 노조 탈퇴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취하를 종용하고 있다. 이건 분명한 부당노동행위다.

 

이수호 손잡고 공동대표·전 민주노총 위원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69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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