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6.23 시사IN 오피니언]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박근혜 대통령 임자 만났네” “된통 걸렸구나” “스토커가 따로 없군”….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악화된 여론과 여권의 갖은 눈총에도 스스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서 나온 반응이다. 사실 문창극 후보자가 지명되고 열흘이 지난 6월20일 현재, 여권 인사들이 문 후보자에게 보내는 신호는 매우 노골적이다. 하지만 사방에서 아무리 싸늘한 메시지가 쇄도해도 문 후보자는 요지부동이다. 주말에 해외 순방에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과 교감하고 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6월20일 현재까지는 스스로 물러날 뜻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사이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쑥쑥 빠지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6월18일까지 곤두박질치던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가 19일 반짝 반등한 걸 두고 여론 전문가들 사이에서 “청와대가 문창극 후보자의 버티기에 곤혹스러워한다는 보도가 나간 게 오히려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문 후보자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버티고 있는 걸까. 한 심리학자는 “이래서 확신범이 더 무서운 거다”라고 말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스스로 견딜 수 없어서 빨리 거취를 결정하는 데 비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는 버티기 십상인데, 확신범들이 주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카메라가 클로즈업한 브라질 월드컵 일본 응원단의 욱일승천기 페이스페인팅을 보고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었던 생각이 난다. 정말이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혹여 주말 사이라도 문 후보자가 맘을 바꾼다면, 다음 총리 검증 때는 ‘부끄러움을 아는지’ 여부를 꼭 체크해주시길. 물론 다른 인사에도 몽땅 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공직 후보자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사이, ‘부끄러움’을 아는 시민들은 한 사람 두 사람 노란봉투에 4만7000원의 정성을 담아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로 고통당하는 노동자 가족을 돕기 위한 기금 14억6874만1745원을 모아냈다. 6월19일에는 이 기금을 1차로 지원받을 손배·가압류 피해 가구를 발표하는 행사가 열렸는데, 보름에 걸쳐 진행된 심사에 참여하면서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진심은 통한다”였다. 돈을 보내는 이들이 ‘그동안 무심했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다’를 연발했던 것만큼이나, 지원을 요청하는 이들 역시 “귀한 돈을 덥석 받게 되어 부끄럽고 미안하다. 내게는 최소한만 지원하고 더 절박한 이들을 도와달라”는 뜻을 신청서 곳곳에 밝히고 있었다. 돼지저금통 깨고 반찬값 털어 캠페인에 참여한 4만7547명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다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지난 112일간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해주신 ‘부끄러움을 아는’ 독자와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숙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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