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24 경향신문사설] 파업 손배소 공론화 필요성 일깨운 법원 판결

MBC가 파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노동조합과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낸 195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 어제 서울남부지법은 2012년 MBC 노조 파업에 대해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정당한 쟁의행위”로 판단하고 사측의 손배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앞서 법원은 파업 참여 노조원 44명이 낸 해고·정직 무효확인 소송에서도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노조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 울림을 갖는 까닭은 손배소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보복·위협 수단으로 악용되는 상황 탓이다. 부산지법은 지난 17일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벌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를 상대로 사측이 낸 소송에서 5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말에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쌍용차 조합원들에 대한 소송에서 각각 90억원, 47억원을 물어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손배와 가압류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잇따르고 있다.

보다못한 시민사회·노동계 인사들이 무분별한 파업 손배소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나섰다. 오늘 준비모임이 열리는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을 위한 손잡고’(약칭 손잡고)가 그것이다. ‘손잡고’ 결성을 제안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해외에서는 파업 후 손배 청구가 야만적 수단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법리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실제 손배소를 제기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조합원 수에 따라 손배소 가액을 법으로 제한하고, 독일에서는 노조별로 단체협약을 통해 손배 상한선을 미리 합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손배 책임을 면제하고 있다. 그러나 판례상 ‘합법 쟁의’로 인정되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은 게 문제다. 법원은 가혹한 손배 판결이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 국회는 폭력·파괴 등에 따른 직접적 피해에만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손배 청구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는 이 같은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어제 승소한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은 “이번 판결이 노조에 대한 무자비한 손배·가압류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그의 말을 경청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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