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1.22 경향신문] 계속 '살(殺)노동' 사회로 갈 것인가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은 노동을 하며 삶을 꾸려간다. 육체노동이건 지식노동이건, 블루칼라건 화이트칼라건. 고졸자건 대학생이건 대부분의 청년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시민들은 ‘노동자’ 호칭을 꺼린다. 파업이 발생하면 불편해하거나 심지어 불온시하며 비난한다.

일전에 코레일 파업이 일어나자 정부와 보수언론은 ‘노동귀족’들이 돈 더 받으려고 파업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은 개혁해야 한다. 공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질문 몇 개를 던져보자. 코레일의 적자는 노동자의 임금 탓이었나? 철도노동자가 19년 근속하여 평균 약 6300만원을 받으면 ‘귀족’이 되나? 바람직한 사회는 임금이 하향평준화되어 모든 노동자가 겨우 생계만 이어가는 ‘노동천민’이 되는 세상인가? 재벌 임원같이 연간 수십억원, 수백억원을 버는 진짜 ‘귀족’에 대해선 비난은커녕 당연시하거나 부러워하면서 왜 철도노동자의 연봉은 비난할까? 철도노동자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파업하면 동조하면서 칭찬할까?

한편 중앙대에서 일하고 있는 미화노동자들이 비인격적 대우와 업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들어가자, 중앙대 총학생회는 이 문제는 중앙대와 관계없는 하청업체의 일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파업으로 인한 중앙대의 ‘브랜드 가치’ 하락을 우려하면서. 이는 노동계약서에 중앙대 이름이 없으니 중앙대는 책임 없다는 전형적인 형식주의의 주장이었다. 조직의 브랜드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인권은 부차화되어야 한다는 경영자 편중의 주장이었다. 미래의 노동자가 자신을 자본가 또는 경영자와 동일시하고 현재의 노동자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삶이 아무리 팍팍해졌어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이 이렇게 약해졌는가 싶어 씁쓸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합법적 파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법원은 구조조정, 합병, 사업조직 통폐합, 정리해고 등은 ‘경영권’ 사항이기에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권’ 사항은 노동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에 즉각적이고 중대한 변화를 일으킴에도 말이다. 다수 선진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공동경영 등 ‘산업민주주의’는 교과서에만 있을 뿐이며, ‘경영권’을 건드리는 파업은 바로 불법이 된다.

게다가 ‘경영권’을 건드리지 않는 파업도 범죄로 처벌된다. 특히 형법 제314조의 업무방해죄는 노동쟁의를 범죄화하는 핵심도구다. 헌법이 명시적으로 노동쟁의를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정시출퇴근하거나, 시간외근로를 거부하거나 집단조퇴·집단휴가를 사용하면 폭력, 파괴, 협박 등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업무방해로 처벌된다. 노동쟁의권은 원래 노동자의 일방적 근로계약의 파기를 보장하는 것임에도, 노무제공 거부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면 또한 업무방해로 처벌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에서는 다 허용되는 쟁의 전술인데도 말이다. 그리하여 2007년 국제노동기구(ILO)와 2009년 11월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각각 업무방해죄 적용으로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약화되며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노사관계의 형성이 막히고 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파업노동자에게는 형사처벌에 더하여 수십억원, 수백억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가해진다. 형사처벌은 몸으로 때우면 된다 치자. 그러나 월급, 예금, 집, 전세금 등을 다 빼앗아가는 민사소송은 생계의 뿌리를 잘라버린다. 그 결과 가장이 자살하고, 부부가 이혼하고, 아이들은 흩어진다. 중앙대의 경우 청소노동자들이 학내에서 구호를 외치거나 대자보를 붙이면 100만원씩 지급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이 모두 노동운동을 위축시키고 가정을 파괴하는 ‘돈 폭탄’이다. 이 ‘폭탄’을 맞은 노동자들은 어차피 망한다고 생각하고 격렬한 투쟁을 전개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이 하위 법률인 형법과 민법으로 인하여 껍데기로 전락하고 있다. 이 문제는 사회의제화되어야 한다. ‘노동하는 인간’은 연대해야 한다. 파업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가족, 내 이웃 그리고 종국에는 내 자신의 일이다. 정치권은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선거용 또는 창당용 친(親)노동 생색내기 코스프레는 그만두라. 노동자를 ‘임금노예’로 만드는 법제는 바꾸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친노동’ 사회는 못되더라도 ‘살(殺)노동’ 사회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12049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