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2.02 경향신문사설] 돈으로 노동자를 죽이는 일 막아야

2009년 쌍용자동차가 2646명을 정리해고한 데 맞서 77일간 공장 점거 파업을 벌인 노동자들에게 47억원에 이르는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회사가 청구한 150억원 가운데 33억1140만원, 경찰이 청구한 14억6000만원 가운데 13억7000만원 등 모두 46억8140만원을 쌍용차 노조원과 금속노조에 물린 것이다. “목적 및 수단에 있어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쟁의행위로서 위법하고, 그 파업에 폭력적인 방법으로 가담한 피고인들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게 재판부가 지난달 29일 밝힌 판결 이유다. 법적인 시시비비를 떠나 정리해고로 5년 동안 고통받고 그 때문에 24명이 죽음에 이른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결과적으로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손해배상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나 노조에 감당할 수 없는 돈을 물리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노조의 활동과 존립을 위협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삶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손배소·가압류는 한진중공업 김주익·최강서, 두산중공업 배달호 등 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요인이기도 했다. 쌍용차의 경우도 이번 판결로 150명가량이 1인당 3254만여원을 물어내야 할 판이다. “이 같은 천문학적 금액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고, 노동자를 죽음 끝 벼랑으로 모는 행위”라는 게 노조 측의 말이다. 회사 측은 정리해고자는 물론 희망퇴직자, 무급휴직자, 게다가 지난 3월5일 복직시킨 노동자에게까지 손배소를 풀지 않고 임금·퇴직금·부동산 등에 대해 28억9000만원의 가압류를 해놓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와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손배소·가압류는 최근 호전되는 기미를 보이던 쌍용차 문제를 다시 최악의 사태로 몰고 가는 불씨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와 정부 측의 자세라고 본다. 쌍용차 사태 해결과 경영 정상화는 손배소·가압류 문제 해소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안된다.

정치권은 손배소·가압류가 노조의 존립과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시급히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손해배상·가압류 청구의 요건과 범위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돈으로 노동자를 죽이는 것은 자본과 권력이 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하고 야만적인 폭력이다. 이를 막는 게 정치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정치권은 쌍용차 사태의 많은 책임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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