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캠페인 제안 시민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배춘환

[노란봉투캠페인 제안 시민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윤석열 대통령님께

저는 10년 전 겨울에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이 청구됐다는 기사를 본 후였습니다. 해고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이고 충격인데, 생계도 막막한 해고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이라니, 숫자를 듣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돌에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셋째를 임신 중이었고, 이런 세상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한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47억원의 10만분의 1인, 4만7000원을 동봉해 한 시사지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공개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4만7000원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족이 짜장면 먹을 외식비를 대신 보낸다는 가장, 아들이 취준생인데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어머니, 1000원씩 47명이 모았다는 고등학생들, 장난감을 안 사고 보낸다는 7살 아이까지. 그렇게 노란봉투 캠페인이 시작됐고,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노란봉투법의 시작은 여당과 야당의 대립도 아니고, 경영계와 노동계의 대립도 아니었습니다. 내 이웃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 정의로웠으면 하는 마음, 돈 때문에 누군가 더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법이 노란봉투법입니다.

 

내 이웃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저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담아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이게 연대의 힘이구나, 시민 효능감이라는게 이런 것이구나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한 사람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불치병을 앓는 아이의 아빠라고, 내 아이가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내 아이가 살아서 어른이 된다면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한다던 그 아버지. 그 아버지도 어딘가에서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계실까.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까. 드디어 우리가 그 아이를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든 것일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들에게 노란봉투법은 경영권을 저해하는 법도 아니고, 파업을 촉진하는 법도 아닙니다. 내 아이가 삶의 안정감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하는 법, 부당함에 처했을 때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법, 남을 밟아야 네가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법입니다. 우리들에게 노란봉투법은 품위 있는 시민으로 살기 위한 복지이고 민생입니다.

 

노란봉투법이 있기까지 마음을 모았던 많은 국민들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법이 없는 동안 죽어나간 많은 인생들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법이 있음으로써 꿈을 꾸게 될 많은 청년들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2023년 11월27일

국민의 한 사람 배춘환 드립니다.

 

*본 글은 시사IN에 기고한 편지글입니다. 아래 기사로 보기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