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고 논평]
14년 국가폭력 피해 외면한 판결, ‘노란봉투법’으로 바로잡자
-쌍용차 국가손배 파기환송심 판결에 부쳐
우리는 오늘 사법부 판결만으로는 노동권을 넘어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을 다시금 목도했다.
25일 서울고등법원(제38-2민사부 민지현, 정경근, 박순영)은 쌍용차 국가손해배상 파기환송심에서 2009년 8월, 쌍용차 정리해고 파업 강제진압 과정에서 투입된 기중기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1억7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선고에는 개인 36명 모두를 포함했다.
결과적으로 국가손배 사건에서 사법부가 원고인 경찰의 책임을 90% 인정하면서도, 10%의 책임을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끝까지 전가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내놓은 것에 대해 ‘이것이 사법부가 판단하는 정의인가’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 판결의 대상인 ‘기중기’는 명백히 ‘국가폭력 도구’로 활용됐다.
가해자인 경찰이 2009년 8월 쌍용차 공장에서 벌어진 국가폭력 행위에 대해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국가폭력’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기중기’는 컨테이너를 매달아 공장 옥상을 휘젓고, 진압장비를 실어 나르는 등 대법원에서 ‘정당방위’로 판단된 ‘헬기’와 같은 역할의 도구로 활용됐다. 헬기는 ‘정당방위’인데 기중기는 ‘정당방위’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사법부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것이 노동사건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가해 도구에 대해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 오늘 사법부는 ‘피해자가 노동자라면 배상해도 된다’는 기이한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사법부는 개인이 ‘기중기’ 손괴를 했는지 명확히 따지지 않았다.
지난 14년동안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36명이 기중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손괴를 일으켰는지 수사기관도 판단하는 사법부도 제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36명은 단지 간부라는 이유만으로 배상책임의 대상이 됐다. 심지어 먼저 구속되어 사건이 있던 2009년 8월에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개인까지 ‘손괴’에 대한 책임 대상이 됐다.
사건 현장에 없었던 사람에게, 또한 직접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이 ‘노동자’이자 ‘노동조합의 간부’이고 행위가 ‘쟁의행위’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행위를 했는지 판단없이도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것은 정당한가.
국가폭력을 지시한 국가기관과 개인의 책임은 실종됐다.
2018년 경찰이 ‘국가폭력’을 인정한 이후, 시민단체와 국가폭력 피해자들로 구성된 ‘국가손배대응모임’과의 4차례 걸친 면담 과정에서도, 경찰은 ‘대법원은 조정절차가 없어서 조정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조정절차가 있었던 파기환송심에서 경찰은 끝내 ‘개인을 배상책임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포함한 법원의 조정결정을 걷어 찼다. 경찰은 국가폭력에 대해 서면으로, 구두로 수 번 ‘사과’를 했을지언정, 재판을 계속 끌고나가며 국가폭력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가폭력 가해자의 입장에서 노동자 개인들이 피해자라 할지라도 행위의 책임을 지라고 강요한 것이다.
그런 경찰은 자체조사과정에서 국가폭력 지시자로 지목된 조현오 전 경기청장과 이명박 청와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한 ‘국가폭력’을 대하는 책임기관의 태도다.
사법부는 이번 사건에서 원고인 국가의 책임을 90% 인정했지만, 이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처리된다. 이 재판에서 실질적인 책임은 국민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모두 짊어진 것이다. 이것이 정당한가.
14년 국가폭력의 고통은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사법부의 판결로도 ‘노동자’라는 이유로 당한 국가폭력과 개인의 권리침해를 바로잡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오늘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 사법부 판결을 통해 재차 확인했다. 노란봉투법 입법을 통해 다시는 누구도 입증되지 않은 책임을 지지 않도록,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이유로 ‘국가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제도개선의 첫 걸음을 뗄 것이다.
2023년 8월 25일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