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25 한겨레] 경찰의 손배 소송 취하는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일까요?

경찰의 손배 소송 취하는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일까요?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3349.html

 

더(THE) 친절한 기자들

세월호 집회 손배 조정 뒤 경찰 1인 시위로 항의
일부 언론은 ‘법치 무너졌다’며 한탄하기도
과연 한국사회의 법치는 무너진 것일까요?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5월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및 관련 단체에 대한 경찰의 괴롭힘 소송 중단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경찰이 세월호 1주년 집회 당시 주최 쪽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금전 배상 없는 조정으로 마무리했습니다. 경찰은 2015년 4월18일 세월호 추모 집회 등에서 경찰 장비가 파손되거나 경찰관들이 다쳤다며 같은 해 7월27일 집회 주최 쪽에 7780여만원을 물어내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소송이 제기된 지 3년이 지난 지난달 20일 이 사건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88단독 황혜민 판사는 국가는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유감을, 집회 주최 쪽은 경찰관의 피해 등에 유감을 표명하는 방향의 강제조정안을 제시했습니다. 법원의 강제조정안은 2주 동안 양쪽의 이의제기가 없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집니다. 강제조정안이 제시된 지 2주가 지난 9월3일까지 양쪽은 이의제기하지 않았고, 소송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경찰개혁위원회가 집회·시위를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데 신중히 하고, 앞서 제기된 소송은 취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권고한 뒤 처음 조정을 받아들인 셈입니다.

 

하지만 일부 경찰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홍아무개 경감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불법과 타협한 경찰청”이라는 피켓을 들고 경찰이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받아들인 것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했습니다. 홍 경감 만이 아니라 경찰 내부에는 집회 시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취하나 조정에 반감을 가진 경찰관들이 많습니다. 일부 언론들도 ‘법치’가 무너졌다고 한탄합니다. 소송 취하로 한국 사회의 법치가 무너진 것일까요. 이 판단을 하려면 일단 법치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법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어려운 질문은 가끔 반대쪽에서 출구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홍 경감과 보수 언론이 그토록 지키려드는 법치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불법시위’는 아닙니다. 법치의 반대말은 ‘인치’입니다. 왕이나 군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둘 수 있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암흑 같은 시절을 벗어나기 위해 시민들은 법치를 ‘발명’했습니다.

 

근대적 형태의 법치는 1215년 만들어진 영국 ‘대헌장’(마그나카르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헌장에는 왕의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이 빼곡하게 담겨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는 ‘영국 자유민은 법이나 재판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유, 생명, 재산을 침범할 수 없다’라는 내용입니다. 다스리는 자가, 자신이 다스리는 이들의 자유와 생명과 재산을 함부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법치는 시민들에게 법을 잘 지키라고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개인의 의지나 감정이 아닌 법에 정해진 틀 안에서 권한을 행사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가령 법치가 무너진다는 것은 이런 장면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은 2016년 11월16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 했습니다. 1인 시위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집회’가 아니기 때문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엇에 대해서든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304명의 생명이 스러져가던, 대통령이 사라진 ‘7시간’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나요”라는 피켓 문구를 문제 삼아 1인 시위를 금지했습니다. ‘대통령에게 위해가 될 수 있다’라는 법적 근거도 없는 이유를 들면서 말입니다. 피켓이 총이나 대포도 아니고, 고작 1명이 청와대 담을 넘어 수많은 경호원을 물리치고 대통령에게 달려갈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사회는 이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웠습니다. 법치를 지킨 것은 어느 쪽인가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유남영 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용산참사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홍 경감의 1인 시위를 응원합니다

 

안타깝게도 폭력적인 집회는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다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다친 동료들이 안타깝고, 그 폭력의 상대방이 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홍 경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 뿐만 아니라 그 원인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홍 경감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사실 경찰처럼 위계 질서가 강한 공무원 사회에서 조직의 결정에 반대되는 의사표시를 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1인 시위’처럼 주목도가 높은 표현 방식은 자칫 ‘일탈 행위’로 찍힐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정상적인 경로를 밟지 않았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홍 경감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면 1인 시위와 같은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에 정복을 차려입고 거리로 나왔을 것입니다. ‘꼭 1인 시위였어야 했느냐’는 질문은 그래서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이 관점을 반대편에도 적용해 봅시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은 일터를 잃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정부도 언론도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해고를 앞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파업과 공장 점거 정도 뿐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노사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 경찰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조사위원회’(인권침해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경찰은 이들 노동자에게 다목적 발사기와 같은 대테러 장비를 사용했습니다. 헬기에서 최루액을 살포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을 어긴 위법 행위입니다.

 

노동쟁의는 노사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원칙입니다. 실제 ‘인권침해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은 “노사협상의 여지가 있으니 시간을 더 둘 필요가 있다”며 강제진압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강 청장을 건너뛰고 청와대와 직접 통화를 해 진압 작전을 승인받고 공장으로 밀고 들어갔습니다. 공장 안에서 벌어진 폭력은 그런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폭력의 원인은 어느 쪽에 있는 것입니까?

 

■ 형사재판과 다른 민사재판일 뿐입니다

 

경찰들의 ‘단골’ 질문이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불법 폭력 집회를 한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말라는 것이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경찰이 손해배상 소송을 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도, 세월호 집회 주최 쪽도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한상균 당시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징역 3년을 살았습니다. ‘불법’ 파업에 따른 형사 책임을 진 것입니다.

 

문제는 손해배상 소송이라는 민사소송의 성격입니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은 다릅니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을 요구하는 형사재판과 달리, 민사재판은 ‘고도의 개연성’만 있어도 한쪽 손을 들어줄 수 있습니다. 개연성은 ‘확실치는 않아도 그럴 법한’ 수준을 의미합니다. 이 개연성은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법원에 많이 제출하는 것만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가와 개인이 다투는 민사소송은 필연적으로 불공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은 수사를 합니다. 통화내역을 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을 불러 조사도 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할 수도 있고 사람을 구속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집회·시위가 있으면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차곡차곡 모아둡니다. 수사기관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를 증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경찰에게 주어진 권한입니다.

 

경찰은 범죄를 증명하기 위해 수집한 자료 중 유리한 부분을 떼어내 손해배상 소송에도 냅니다. 가령 집회 동영상을 찍었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장면만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경찰과 달리 시민들의 손에는 대등한 무기가 쥐어져 있지 않습니다. ‘기울어진 저울’에 사건을 올리는 것 자체가 불공정한 행위입니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7월3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 김주중씨 분향소에서 상복 차림으로 김씨의 영정을 들고 참배객의 조문을 받고 있다. 김씨는 쌍용차 파업 진압 당시 경찰에게 맞아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으며 손해배상 소송 등의 문제로 괴로워하다 6월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법치의 역사가 불과 12년 전 시작됐나?

 

사실 경찰이 집회를 문제 삼아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2006년 11월 충남경찰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주최한 대전·충남 지역 시민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 처음입니다. 집회·시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의 승소 여부에 ‘법치의 성패’를 걸 정도로 우리의 법치란 부박한 것입니까?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 12년 동안 우리는 진짜 ‘법치’가 무너진 순간들을 숱하게 목격했습니다. 불과 1년 반 전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온갖 범죄 혐의가 인정돼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것이 바로 법치의 붕괴입니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의 물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은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직사 살수를 실행했던 경찰들은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의 남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이 바로 ‘법치’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법치를 무너뜨린 쪽은 어디입니까?

 

현재 경찰이 폭력적인 집회·시위 탓에 피해를 입었다며 시민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5건입니다. 쌍용차 파업(청구금액 16억6961만원),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5억1709만원), 한진중공업 희망버스(1592만원),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3억8667만원), 2015년 노동절 집회(2218만원) 등이 그 대상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청구금액이 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파업 이후 노동자와 가족 30명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 죽음의 원인 가운데는 국가가 나서 손해배상 책임을 묻겠다고 달려든 소송에 대한 부담도 묻어 있을 것입니다.

 

‘인권침해조사위’는 용산참사,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쌍용차 파업 진압 과정에 경찰의 ‘위법’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 처벌이 어려울 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찰도 용산에서 목숨을 거둔 철거민과 경찰, 백남기 농민,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 30명의 목숨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절대 불법과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피켓을 든 경찰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경찰이 법치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시민을 상대로 한 소송 종결에 항의하며 법치를 운운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시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시민을 상대로 경찰력을 남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입니까. 경찰은 스스로 ‘제복을 입은 시민’이라고 표현합니다. 경찰이 다시 시민의 곁에 서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