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뒤늦은 사과…손배소송 취하는 “여전히 검토 중”
허진무 기사 imagine@kyunghyang.com
민갑룡 경찰청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 권고 이행계획 보고회에 참석해 피해자와 가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경찰이 법 집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은 피해자와 가족에게 뒤늦게 공식 사과했다.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와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에 대한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다.
경찰청은 26일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보고회를 열고 해산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민갑룡 경찰청장(54)은 진상조사위가 밝혀낸 경찰의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민 청장은 “경찰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남용돼서는 안되며 절제돼 행사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확인됐다”며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기도 했고 인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민 청장의 사과는 진상조사위의 최초 사과 권고가 나온 지 11개월 만이다. 민 청장은 전날 피해자와 가족 30여명을 직접 찾아 사과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진상조사위는 그간 용산참사·평택 쌍용자동차 파업·밀양 및 청도 송전탑 건설·제주 강정마을·고 백남기 농민 사건·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시신 탈취·KBS 공권력 투입·공익신고자 입건 및 부당수사 사건 등을 조사했다.
경찰은 진상조사위가 권고한 제도개선안 35개 중 27건의 이행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진상조사위는 쌍용차 파업과 백 농민 사망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손배소송과 가압류를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경찰은 쌍용차 파업 노조에 대한 가압류만 철회하고 손배소송은 취하하지 않았다. 고(故) 백남기 농민이 숨진 민중총궐기 참가자에 대한 손배소송도 법원의 ‘화해 권고’ 결정이 났지만 이의 제기 여부를 검토 중이다.
민 청장은 쌍용차 손배소송에 대해 “대법원 계류 중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며 “판결을 존중해서 취지에 맞게 적극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중총궐기 손배소송에 대해서도 “법원의 화해 권고를 적극 검토해서 수일 내에 의견을 표방할 예정”이라고 했다.
경찰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단체 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경찰이 늦게나마 사과를 했지만 진정성을 증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쌍용차 손배소송 철회에 대해 이행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유감스럽다”며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법 절차를 이유로 소송을 유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경찰이 손배소송 철회를 망설이는 이유는 내부 반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경찰이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단체에 대한 손배소송을 금전 배상 없는 법원 조정으로 끝내자 ‘경찰청이 불법과 타협했다’는 내부 비판이 있었다.
경찰은 2009년 8월 쌍용차 파업 당시 입은 물적·인적 피해를 배상하라며 쌍용차 노조에 대해 16억8000만원의 손배소송을 냈다. 항소심 법원은 11억6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매달 지연이자가 붙어 배상금은 24억원으로 불어났다. 경찰이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민주노총을 상대로 낸 3억8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법원은 지난 15일 양측의 화해를 권고했다. 민주노총은 1억500만원을 법원에 공탁한 상태다. 소송 당사자들이 법원의 결정문을 송달받은 뒤 2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결정이 확정돼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