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후 10년 전 퇴직금 받았지만…손배·가압류에 ‘절망의 덫’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쌍용차 복직자 사례로 되짚는 손배·가압류의 비극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더 공격적으로 진행됐다. 시민단체 ‘손잡고’에 따르면 2002년 345억원 규모였던 손배 금액은 2017년 1867억원으로 5배 이상 늘어났다. 2014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손배 가압류 잡는 손잡고’가 출범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모씨는 압류됐던 퇴직금을 찾기 위해 최근 법원을 찾았다. 2009년 ‘쌍용차 2646명 정리해고 사태’ 때 해고된 그는 지난해 12월31일 복직했다. 10년 만의 복직 이후에야 만져보게 된 퇴직금 1000만원. 그는 최근 법무부가 쌍용차 복직자들에 대한 임금·퇴직금 가압류를 해제하면서 이 돈을 돌려받게 됐다.
“그날 정말 오랜만에 크게 웃어본 것 같아요. 원래 내 돈이었는데도…. 지난 10년간 그 정도 돈이 통장에 들어온 건 처음이거든요.” 퇴직금을 찾은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연 이율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갚은 것이다. “제2금융권에서 받았어요. 한결 마음이 후련하죠.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지만….”
2009년 파업 당시 김씨는 노조 집행부였다. 파업은 77일 만에 끝났지만, 회사와 국가가 청구한 수십억원대의 손배(손해배상)·가압류가 지난 10년간 그를 따라다녔다. 경찰은 파업 당시 피해를 배상하라며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2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조합원 67명에 대해서는 임금과 퇴직금, 부동산 등 8억9000만원을 가압류했다. 2016년 항소심 이후 금액이 줄어 김씨를 비롯한 39명에게 4억원 상당의 가압류가 남았다. 지난해 노사 합의로 10년 만에 돌아온 복직자들의 첫 월급조차 가압류로 반토막이 나 논란이 일자 법무부는 뒤늦게 가압류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가압류 대상자 39명 중 복직자 26명에 대해서만 해제돼 나머지 13명은 해고자 신분으로 가압류까지 짊어지고 있다.
■ ‘희망’까지 압류당했다
10년간 퇴직금 묶여 빚더미에
법무부, 복직자만 가압류 해제
해고자들은 여전히 무거운 짐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10년의 세월을 “내 이름으로는 계좌 하나 만들기도, 월세방 계약을 하기도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했다. 김씨는 “가압류에 걸린 사람들은 안정된 일자리보다는 일용직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쌍용차 출신’이라고 하면 채용을 꺼리는 회사들이 많았다. 고정급여를 받으면 언제 다시 가압류를 당할지 몰랐다.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불안’과 ‘불안정’이 옥죄었다. “집 계약이나 자동차 등 경제활동 모두를 아내 명의로 했어요. 하다 못해 가압류가 언제 걸린다는 걸 알면 계획이라도 세울 텐데, 그것도 아니니까요.”
10년의 해고 기간만큼 빚이 쌓였다. 가압류 해제로 퇴직금 일부를 되찾게 된 또 다른 복직자 원모씨도 “퇴직금을 받자마자 대출금을 갚는 데 썼다”고 했다. 원씨는 “손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고 복직하지 못한 분들의 가압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아 불안하다”고 했다.
쌍용차 노조와 조합원에게 남은 손배 금액은 11억6700만원으로, 매달 1900만원 가까이 붙는 지연이자까지 합하면 18억원이 넘는다.
김씨는 한동안 머뭇거리다 그의 이름을 꺼냈다. 고 김주중. 지난해 6월, 생활고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쌍용차 서른 번째 희생자다. “힘든 점이 많았는데, 그분한테도 손배 문제가 있었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몇 만원도 조급해지고 아쉽고…. 사용자나 국가는 밥 먹듯이 쉽게 거는 게 손배·가압류인데, 그게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거죠.”
김승섭 고려대 교수 연구팀이 지난 1월 발표한 손배·가압류 피해 노동자 건강실태를 보면, 손배·가압류를 경험한 남성 노동자의 30.9%가 ‘지난 1년간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일반 남성에 비해 19.6배 높은 응답률이었다.
■ 노동자 내모는 손배, 더 악랄해져
노조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배·가압류가 사회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씨가 손배·가압류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다. 그해 11월11일 민주노총 지도부가 서울 광화문 KT 건물 앞에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 및 가압류 금지’ 등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이틀 후면 급여를 받는 날이다. 6개월 넘게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유서)
노조 쟁의행위에 대해 기업이 손배소로 대응한 첫 사례는 1989년 노태우 정부 때로 알려졌지만, 이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천문학적 금액의 손배·가압류로 노동자들이 세상을 등지고 난 이후부터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씨가 ‘사람을 죽게 하는’ 손배·가압류를 고발하며 목숨을 끊었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배달호씨가 고발했던 ‘통장 잔액 0원’이 이제는 최저생계비 정도 보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기업은 물론 국가의 손배 청구는 더 공격적으로 진행됐다. 시민단체 ‘손잡고’에 따르면 2002년 345억원 규모였던 손배 금액은 2017년 1867억원으로 5배 이상 늘어났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창조컨설팅 등 노무법인을 통한 전략적인 ‘노조 파괴’ 기획이 진행되면서 손배·가압류가 대표적인 노조 탄압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며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손배를 노조가 감당할 방법도 없고, 회사의 청구 목적도 실상은 ‘배상’이 아니라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북 구미의 반도체 부품업체 KEC에서도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가동됐다. 2011년 2월 이 회사는 노조 파괴 및 친기업 노조 설립 전략을 담은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이라는 문건을 만들었다. 2017년 법원은 이 문건을 근거로 KEC가 파업에 참여한 금속노조 조합원 75명을 정리해고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법원이 사측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지만, 당시 파업을 했던 조합원들은 여전히 회사가 낸 손배소로 월급을 압류당하고 있다.
150만원. KEC 노동자 이종희씨의 월급통장에 매달 찍히는 금액이다. 그와 금속노조 KEC지회 소속 41명의 동료는 잔업이나 특근을 해도, 명절 상여가 나올 때도 급여를 더 받지 못한다. 150만원이란 ‘최저생계비’만 남기고 나머지는 채권 가압류로 회사가 가져간다. 이 생활이 2016년 10월 이후 28개월째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2010년 파업을 벌이자 노조를 상대로 301억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6년여 후인 2016년 법원은 ‘3년간 임금 가압류를 통해 30억원을 배상하라’는 강제조정안을 내놨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형사재판 판결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4개월 뒤였다. ‘파업자 심리적·경제적 압박 강화’ ‘손배소 가압류로 조합의 자금줄 봉쇄’ 등 구체적인 전략이 회사의 노조 파괴 문건에 담긴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지만, 이미 급여 압류는 꼬박꼬박 진행되고 있었다.
사측의 ‘노조파괴’ 무기에
노동자들 ‘극단적 생각’ 많아
이 와중에도 회사는 복직한 노동자들에게 손배·가압류를 ‘무기’로 휘둘렀다. 이종희씨는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지금이라도 퇴사하면 손배에서 빼주겠다고 했고, 그런 회유·협박에 못 이겨 퇴사한 사람들이 꽤 된다”고 했다.
70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 숫자는 현재 112명으로 줄었다. 이중 41명이 3억원을 3년간 나눠 내야 한다. 누군가 퇴사하면, 그 빈자리만큼 남은 이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 커지기 때문에 퇴사도 쉽지 않다. “아이가 셋 있는 사람,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 그런 조합원들이 함께 분담하는데, 여기서 그만두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는 거죠. 힘들지만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가 돈으로 탄압받고 월급까지 압류되고 있지만, 우리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회사는 다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버텨서 이렇게 노조를 지켜냈다는 것을요.”
■ 국회서 잠자는 법안
손배소 피해 노동자들은 손배·가압류가 사측의 ‘노조 탄압의 종착점’이라고 말한다. 김승섭 교수팀의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회사의 손배·가압류 이후 동료가 노조를 탈퇴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률이 94.9%에 달했다. 형사처벌과 징계, 경제적 압박으로 기존 노조는 와해되고, 친기업 성향의 제2, 제3 노조가 들어선다. 혹자는 회사를 떠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노조 파괴 전문 컨설팅업체인 ‘창조컨설팅’이 휩쓸고 간 유성기업에서도 손배소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유시영 유성기업 회장은 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따른 부당노동행위로 2017년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아 법정 구속됐지만, 그가 복역 중일 때도 개별 조합원들에 대한 사측 관리자들의 손배소 소장은 꾸준히 날아들었다. 김성민 유성기업 영동지회 사무장은 “2011년 파업 이후 사측이 처음 청구한 손배 금액이 40억원 정도였는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평생 만질 수도 없는 금액”이라며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는 제대로 기소되지 않는 데 비해 이에 맞서 노동자들이 싸우면 쉽게 형사처벌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7년 “파업은 본질적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행위”라며 파업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같은 해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도 손배·가압류를 “쟁의행위 참가 노동자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규정하며 당사국의 자제와 독립조사 실시를 권고했다.
국회서 잠자는 ‘노란봉투법’
애꿎은 노동자만 노랗게 떠
기업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19대 국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단 한 차례 논의됐을 뿐 20대 국회에서도 잠자고 있다.
쌍용차처럼 국가가 노조를 상대로 낸 손배소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 경찰의 쌍용차 파업 진압을 청와대에 의해 최종 승인된 과잉 진압으로 결론 내리고 손배소 취하를 권고했다. 하지만 반년이 흐르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