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29 한겨레] 9년만에 복직 쌍용차 노동자 경찰 가압류로 월급 ‘반토막’

9년만에 복직 쌍용차 노동자 경찰 가압류로 월급 ‘반토막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0424.html#csidxd6c4c9606af0c0eb1b7cba218ae4564

 

경찰이 2009년 파업 피해에 소송…아직도 39명 3억9천만원 ‘족쇄’
“회사가 미리 알려줬지만 착잡”…경찰 “이달 중순 해제 의견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 김정욱씨.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 김정욱씨.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85만1543원’

지난달 31일 9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 쌍용자동차 노동자 김정욱씨가 복직 뒤 받은 첫 월급이다. 경찰이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장비 등 피해를 입었다고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으로 가압류한 돈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25일 받은 월급명세서에서 ‘법정채무금 공제’라는 명목으로 나라가 빼간 돈은 91만원이다. 김씨가 손에 쥔 돈보다 많다. 김씨와 같은 처지에 있는 쌍용차 복직 노동자들은 세 명이다. 장아무개씨는 19만771원, 최아무개씨는 123만원이 월급 통장에 입금되기도 전에 뜯겨 나갔다.

 

경찰은 2009년 67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1인당 1000만원의 임금 및 퇴직금 가압류를 했다. 부동산이 있는 노동자 22명에게는 1000만원을 추가로 가압류했다. 모두 8억9000만원 규모다. 2016년 항소심 이후 가압류가 일부 풀리긴 했다. 하지만 지금도 39명에게 3억9000만원의 임금 및 퇴직금 가압류가 걸려있고 이 가운데 1명은 부동산까지 가압류됐다. 퇴직금이 부족해 가압류 금액 1000만원을 채우지 못한 3명의 노동자가 복직해 소득이 생기자 바로 압류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119명 가운데 지난달 31일 복직한 사람은 71명이다. 회사는 나머지 노동자들도 올해 상반기 안에 복직해주기로 약속했다. 2009년 파업 이후 9년 동안 서른명의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들을 수 있었던 첫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복직의 기쁨을 가압류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다.

 

“회사가 미리 월급이 가압류될 것이라는 말을 해줘서 짐작은 했어요. 그런데 막상 설을 앞두고 반 토막 난 월급을 받으니 마음이 착잡하네요.” 김정욱씨는 2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25일 쌍용차 복직 노동자 3명이 받은 월급명세서. 경찰의 가압류 때문에 왼쪽부터 장아무개씨, 최아무개씨,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각각 빨간 테두리로 표시된 만큼의 월급을 가압류당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25일 쌍용차 복직 노동자 3명이 받은 월급명세서. 경찰의 가압류 때문에 왼쪽부터 장아무개씨, 최아무개씨,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각각 빨간 테두리로 표시된 만큼의 월급을 가압류당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제공.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파악한 결과, 최근 복직한 71명 가운데 경찰의 가압류 대상자는 모두 27명이다. <한겨레> 취재 결과, 경찰은 이번달 중순께 27명의 가압류를 해제하겠다는 의견을 검찰에 보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기남부경찰청이 손배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데 검찰 쪽에 가압류 대상자 중 이번에 복직한 20여명의 가압류를 풀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이런 판단은 가압류보다 손배 소송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복직한 경우 소득이 생기기 때문에 지금 가압류를 해제해도 대법원에 계류된 손배 소송이 경찰 승소로 확정되면 압류할 재산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가압류가 ‘현재진행형’인 이유는 수원지검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당사자인 소송은 소송 지휘를 검찰이 담당한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가압류 해제 여부를 묻는 말에 “아직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금액’과 무관하게 당사자들에게 큰 고통을 준다. 앞선 24일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팀(김승섭, 박주영, 최보경, 김란영)은 손배 가압류 노동자 233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를 보면, 지난 1년 남성 손배 가압류 노동자들의 자살 시도 비율은 일반 남성의 30배에 달했다. 지난 1주일 동안 우울 증상을 경험한 경우도 남성노동자는 59.7%, 여성노동자는 68.8%로 일반 인구보다 각각 9.5배, 6.7배 높았다. (▶관련 기사 : 손배·가압류 당한 파업노동자 ‘월급 압류’ 지옥의 문…이겨도 낭떠러지)

 

“우체부가 (압류) 등기전달을 위해 수시로 찾아오며 집이 비어 있을 때 현관에 법원 등기를 받으라고 스티커를 붙여놓고 갔을 때… 아이들이 뭐냐고 물었을 때 힘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 이런 것들이 힘들었습니다.”, “공황 장애로 약을 먹으면서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두 김승섭 교수팀의 설문에 응한 손배 가압류 노동자들이 적은 고통들이다.

 

당장은 가압류가 걱정이지만, 더 큰 공포는 손배가 확정돼 집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2013년 경찰이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인정된 금액은 14억1000만원이었다. 항소심에서는 11억6760만원으로 배상 금액이 줄었지만, 지연 이자가 붙어 쌍용차 노동자들은 15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 뒤로 매년 20%씩 지연 이자가 붙어 현재 손배 금액은 20억원이 넘는다. 대법원 판결은 언제 날지 알 수 없다. 김정욱씨는 “가압류는 그렇다고 해도 손배 금액은 정말 갚기 어려운 규모라 더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파업 9년 만인 지난해 12월31일 회사로 복직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첫 출근 전 경기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그동안 함께 싸워 준 모든 이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파업 9년 만인 지난해 12월31일 회사로 복직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첫 출근 전 경기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그동안 함께 싸워 준 모든 이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택/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이번 가압류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복직이 희망이 아니라는 신호를 준 것과 다름없다. 쌍용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위해서는 경찰이 건 손배 자체가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경찰의 쌍용차 노동자 진압 과정을 조사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경찰에 ‘손해배상청구 소송 및 관련 가압류 사건을 취하하라’는 권고를 내놓은 바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등은 30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국가의 손배 소송을 취하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